메릴랜드주 첫 흑인 연방하원의원이자 볼티모어 민권운동의 거인인 패런 미첼 전의원(사진)이 28일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수차례의 뇌졸중으로 요양원에 입원했던 미첼 전 의원은 이날 GBMC병원에서 폐렴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1922년 볼티모어에서 한 호텔 웨이터의 아들로 태어난 미첼 전 의원은 1933년 11세 때 지역 흑인신문언론사 기자인 형 클래런스로부터 한 흑인이 무참히 죽음을 당한 사건을 듣고 흑인 민권운동에 뛰어들 결심을 했다.
미첼 전 의원은 세계2차 대전에 참가, ‘퍼플하트’훈장을 받았으며, 1950년 법정투쟁을 거쳐 칼리지파크 대학원에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입학했다. 1960년대 맥켈딘 볼티모어시장 시절, 전후 국가복원사업인 빈곤퇴치 프로그램을 담당, 가장 영향력있는 빈곤퇴치 행정가로 명성을 얻었다.
1970년 연방하원에 첫 진출한 미첼 전 의원은 8선의 관록을 쌓아가며 공공사업에 흑인사업가들이 참여하도록 애썼으며, 편견의 철폐를 위해 싸웠다. 1970년 연방 보조금의 10%를 지역 정부가 소수계 기업에 할당하게 하는 법안 제정을 추진했으며, 1982년에는 수백만 달러가 드는 도로 건설 사업에 유사한 수정안을 첨가하도록 했다.
미첼 전의원의 집안은 볼티모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정치인 집안이다. 형인 클래런스 미첼 주니어는 전미유색인협회 워싱턴 로비스트로, 클래런스의 부인 주애니타 미첼은 볼티모어 민권운동의 어머니로 불리어지며, 그의 조카 카이퍼 미첼은 현 볼티모어 시의원이다.
평생을 소수계를 위해 헌신한 미첼 전 의원을 ‘양심의 소리’로 부른 쉴라 딕슨 볼티모어 시장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성공과 성장, 안전, 권리는 미첼 전 의원의 결단과 전문지식을 갖춘 헌신에 의한 것”이라며 애도했다.
<권기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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