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 세계음악경연대회 심사위원에
시카고에서 바이올린 제작학교를 설립, 30여년간 운영해 오고 있는 이주호씨가 6월1~12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2007년 차이코프스키 세계음악경연대회 바이올린 제작 분야 심사위원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이씨는 주최측으로부터 왕복 항공료와 숙박비, 심사비(5,000유로) 등의 대우를 받고 피아니스트인 부인 박희옥씨와 30일 모스크바로 떠났다.
이씨는 세계적 첼리스트로 제13회 대회 의장인 로스트로포비치로부터 작년 9월 심사위원 위촉을 받았으나 그는 최근 80세를 일기로 사망, 안타깝게도 만날 수는 없게 됐다. 로스트로포비치는 런던에 망명, 작가 솔제니친과 함께 구 소련의 체제에 반대하면서 워싱턴D.C.의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자 등으로 미국 무대에서 활약했다. 그는 베를린장벽이 무너졌을 때 현장으로 달려가 세계적인 감동을 자아낸 인사로도 유명하다.
심사위원은 이주호씨를 비롯 이탈리아인, 프랑스인 각 1명과 러시아인 등 6명이다. 그는 이미 미국에서 열린 각종 세계대회에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공연부문에서는 세계적 피아니스트 백건우씨가 심사위원으로 뽑혔다.
이주호씨는 3차례에 걸쳐 악기 성능에서부터 오케스트라 연주에 이르기까지 개인 및 단체 심사를 맡는다. 이씨는 심사위원으로 뽑힌 소감에 대해 “옛날 조각가이셨던 아버님(이윤영)께서 ‘동양인이 서양 악기를 다룬다는 것 쉽지 않다. 백지상태에서 바닥부터 시작해라’라고 충고하신 기억이 납니다. 한길만을 걸어 오늘의 보람을 이룬데 대해 기쁨과 자부심을 가집니다”라고 말했다.
70이 넘은 나이에 세계무대 진출에 대해 “시카고 바이올린 학교는 5년 전 비영리단체로 이사회를 구성하고 법인으로 조직을 개편했습니다. 완전히 은퇴한 것은 아니고, 요즈음도 쉬지 않고 취미삼아 바이올린을 만듭니다. 세계에 흩어져 있는 제자들에게는 인격을 갖춘 장인이 되라고 당부합니다. 심사위원 확인 수속을 하면서 국적 난을 쓰는데 주저했지요. 나는 분명히 미국 시민이지만,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적었습니다.”
경동고 출신인 이씨는 일제시대, 전쟁의 아픔, 군악대, 혁명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일찍이 개척정신을 갖고 해외에 나와 뜻을 폈지만, 자신을 낳아 준 조국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다고 귀띔했다.
바이올리니스트로 한때 KBS 심포니 단원으로 활동했으나 시카고에 살면서 연주자의 길이 아닌 제작자의 길을 걸어 왔다. 독일 미텐발트 국립바이올린 제작학교에서 공부했으며 68년 독일정부로부터 ‘거장(Meister) 자격 칭호와 함께 금메달을 받았다.
바이올린 제작 학교가 있는 나라는 독일, 영국, 이탈리아, 미국 4개국 뿐이다. 미국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고 세계적 명성을 갖고 있는 시카고를 비롯해 보스턴, 솔트레이크 시 등 3곳에만 존재한다. 이씨는 바이올린 제작에 관한한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깅 골드(토스카니니 시절 NBC 심포니 악장, 인디애나 음대교수), 프랭크 밀러(시카고 심포니 수석 첼리스트), 윌리엄 푸르설(클리브런드 심포니 악장), 프랭크 굴리, 슈몰 아쉬게 나지, 그리고 정경화, 사라 장, 김영욱 등이 그가 만든 악기를 가졌거나 고객이다. 이씨는 그동안 자신이 직접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300여개를 만들었다.
장인 정신이 깃든 스트라디바리우스 같은 유명 악기는 100억 원 서부터 10억 원 까지 호가하며, 좋은 악기의 70%가 미국에 있다고 한다.<육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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