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근처에서 큰 골프 대회가 있을 때마다 한 사람의 갤러리가 되어 관전하는 것이 취미다.
지난 번 박세리가 명예의 전당에 오른다고 해서, 또 미셸 위, 소렌스탐까지 가까이서 볼 기회여서 구경을 갔다. 13번 홀부터 박세리를 응원했다. 17번 홀을 마치고 18번 홀로 걸어가는데 자지러지는 한국 여성의 괴성에 무슨 큰 일이 벌어진 줄 알았다. 놀라 뒤를 돌아보니 중년의 한 여자가 박세리의 팔을 끌어안고 괴성과 함께 거의 몸부림치다시피 하는데 박세리의 얼굴을 보니 뿌리칠 수도 없고 난감한 표정이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그 많은 사람 속에서 그 여자를 향해 단호하고 엄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했다. 내 얼굴이 워낙 험악했던지 그 여자는 끌어안고 있던 팔을 놓아주었는데 박세리는 내 옆을 지나며 조용히 고맙다고 인사까지 했다.
경기 중에는 사람들과 옷깃 스치는 것도 싫어하는 것이 선수다. 스코어 카드 제출하고 난 뒤 사인이나 악수 정도는 청할 수 있겠으나 경기 중에는 자제해야 한다. 그것이 갤러리의 매너이며 도리다.
이번에 콩그레셔널 골프장에 가서는 한국 사람들의 용기 없는 응원에 실망했다. 최경주가 제일 마지막 조였기에 앞 선 타이거 우즈와 함께 그 어마어마한 갤러리들이 그야말로 폭우 쏟아진 후의 조용한 길처럼 거의 다 우즈를 따라 떠나버렸고 한국 사람이나 미국 사람들이 손꼽을 정도로 남았다. 그 장소가 바로 첫 홀이었는데 최경주가 외롭게 싸우는 것이 안쓰러웠다.
2번 홀 티 박스에서는 한국사람 10여명 등 그나마 조금 남아 모여 있던 사람들이 애플비가 올라서니 박수 치고 야단이더니 최경주가 뒤따라 올라서자 갑자기 전기 나간 라디오처럼 조용해지고 나만 박수 치고 있었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주위를 자세히 둘러봤더니 적지 않은 한국사람이 모여 있는데 손에는 맥주병, 아이스크림, 물병, 양산, 망원경, 백, 가이드 책 등이 들려있고 박수 칠 손은 없었다. 거의 9홀이 끝날 때까지 그런 무드가 계속되었다. 내 손바닥만 벌겋게 되었다.
경기가 진행되면서 주변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싫든 좋든 마지막 조니까 계속 뭉치게 되었고, 끝나갈 무렵에는 우승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그때서야 미국인은 예의상, 한국인은 승리 순간 함께 라는 의미에서 뜨거운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한참 앞에서 타이거 우즈가 갤러리 다 몰고 가버리고 최경주 보기 민망할 정도로 홀이 썰렁한데, 같은 민족이 땀 흘리고 외롭게 달리는데 우리는 얄미울 정도로 박수치는데 야박해서 되겠는가 싶어 당시는 몹시 화가 났다.
일단 갤러리가 되었으면 항상 양손 비워두고 박수 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갤러리로 가는 것은 영화관에 구경 가는 것이 아니라 응원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무덥고 귀찮더라도 그 것이 따뜻한 나의 마음을 플레이어에게 전달하는 방법이며 갤러리로서의 최소한의 매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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