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바쁘게 거미줄을 치고 다녔다
하얗게 혓바늘 돋도록 뽑아내어도
내어 걸 마땅한 자리를 차지하기는
아슴한 서커스보다 어려운 세상
요행들이 걸릴 만한 곳은
누군가 이미 쳐놓은 거미줄에 내가 걸릴 것 같고
가까스로 차지한 그럴듯한 길목에선
심술궂게 흔들고 지나는 바람과
날아드는 벌레들 그물을 뚫고 빠져나가
구멍난 의지의 실타래를 햇빛은 비켜 가
상처 입은 거미줄엔 눈물이 맺혀 있다
후미진 구석 골목에 엎드려
몸 속에 숨겼던 얼굴을 내밀고 내가 나를 본다
이리 길게 자란 팔다리는 어디에 쓸모 있을까
집 문설주 위에 결국
아픔의 회로 한 바퀴를 더 감는다
조옥동 (1941~) ‘어느 귀거래’ 전문
튼튼한 줄을 뽑아내기로 따진다면 인간만한 거미도 없다. 질기디 질긴, 밧줄 서리서리 품고 다니며, 이승에서 가장 좋다는 길목만을 노리는 것이 인간이므로. 뜻밖에 재물이 걸려 횡재를 하기도 하고, 이보다 재수가 좋다면 하늘이 통째로 걸려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모습을 지켜만 보는 소심한 거미도 있다. ‘누군가 이미 쳐놓은 거미줄에 내가 걸릴 것’만 같아서 전전긍긍하다가 몸속에 숨겼던 얼굴이나 겨우 내밀어보는.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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