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관 속에 누워 있는 그녀는 유혹적이다
그녀의 사체는 집요한 욕정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날마다 그녀를 강간한다
죽은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향기들이
살아 있는 나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악취들을 씻어준다
그녀는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나는 하루종일 게걸스럽게 세상을 먹어치운다
그래도 늘 배가 고픈 나에게
그녀는 자신의 뼈와 살을 나누어준다
그녀는 점점 여위어간다
그녀는 더 이상 유혹적이지 않다
나는 그녀를 수챗구멍에 버린다
내일은 보다 풍만한 사체를 사와야지, 라고
중얼거리며 나는 잠이 든다
이렇게 나는
죽음을 탕진시키며 살아간다
이경임(1963~) ‘비누 여자’ 전문
손바닥 안에 가둔 비누로 거품을 복작복작 내면서 생각한다. ‘비누야. 너는 어떤 여자냐. 창녀처럼 유혹적이냐. 요조숙녀여서 부끄러우냐. 온몸을 바쳐서 더러움을 구하는 박애주의자, 아니면 자원봉사자냐. 죽음을 탕진하는 일상이 희극적이냐. 비극적이냐. 네 삶의 끝을 알기나 아는 거냐?’ 비누가 갑자기 캑캑거린다. 내 생각이 자신의 숨통을 조른다며 캑캑거리는 ‘비누 여자’를 나는 함부로 거품을 낼 수가 없어 가만히 내려놓는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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