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지난 뒤 마당을 쓸었다
낙엽 몇 이파리 빗자루에 착 달라붙는다
도쿄대학 어느 여교수가 명명 했다는
젖은 낙엽族이 이런 모습일까
일에 시간에 쫓겨 마땅한 취미도
노년의 준비도 없이 퇴직한 저 사내,
낙엽 된 슬픔이 깃들어 있다
아내의 그늘 맴돌며 떨어지지 않는다
이사 할 때면 멍멍이를 품어 안고
차량에 맨 먼저 올라 타야하리라
밥 한 끼 지을 줄도 세탁기 쓸 줄도 모른다
속옷, 양말이 어느 서랍에 접혀있는 지
연장통엔 뭐가 들었고 두꺼비집은 무얼 하는지
반상회도 쓰레기분리수거일도 모르고
혼자 놀 줄도 모른다
아내라는 빗자루에 물먹은 낙엽처럼
착 달라붙었다가 어디론가 쓸리기 전에
설거지를 배우자, 접시를 깨뜨리자
단추를 달고 구두를 닦자
혼자 장도 보고 야채 값도 깎아보자
책갈피 답답한 논리로는 넘어서지 못한다
아버지의 의자는 크레바스에 빠져 사라졌다
남편들아 오늘, 새에게 먹이를 주고
어항 속 금붕어 똥도 치우자
빨래를 널고 개자
빗자루 끝에 달라붙은 낙엽 파르르 떨고 있다.
이영식 ‘젖은 낙엽族’ 전문
읽는 동안 ‘세일즈맨의 죽음’이 줄곧 따라다녔다. 평생을 세일즈맨으로 일하다 노년을 맞은 주인공 윌리. 그에게 마지막까지 안식처가 되어줬던 것은 아내 린다였다고. 한때 세상을 아름답게 채워줬던, 착하고 헌신적인 린다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어디로 가고, 이런 시가 벽보처럼 나붙는 시대가 되었단 말인지. 젖은 낙엽을 말려줄 따뜻한 바람이 진정 필요하다는 생각을 내내 했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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