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에서 이름을 지운다
접니다. 안부 한 번 제대로 전하지 못한
전화번호도 함께 지운다
멀면 먼대로
가까우면 가까운대로
살아생전 한 번 더 찾아뵙지 못한
죄송한 마음으로 이름을 지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음을 몸이 먼저 아는지
안경을 끼고도 침침해 지는데
언젠가는 누군가도 오늘 나처럼
나의 이름을 지우겠지
그 사람, 나의 전화번호도
함께 지우겠지
별 하나가 별 하나를 업고
내 안의 계곡 물안개 속으로 스러져가는 저녁
허형만 ‘이름을 지운다’ 전문
지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인가. 나는 아직도 지우질 못하네. 십년 이십 년 전의 수첩을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벽돌을 쌓듯이 쌓아놓고 있네. 내 평생의 인연들이 수첩 안에서 곰팡이가 피고, 추억에 좀이 슬고, 그래도 나는 수첩을 버리지 못하겠네. ‘별 하나가 별 하나를 업고’ 가는 것이 눈물겹게 보이는 밤. 나는 누구의 등에 업혀 이 쓸쓸한 이승을 건너가는 별인가를 생각하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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