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생활 중 좋은 것의 하나는 일요일 오후에 가고 싶은 박물관의 선택 범위가 꽤 된다는 사실일 것이다. 편한 옷에 발 편한 신발을 신고 교외에 사는 사람이라도 기차를 타고 지하철 한번만 거치면 대부분의 박물관엘 갈 수 있는데, 일요일 오후의 행선지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가장 큰 메트로폴리탄이 아니라 구겐하임이다.
야단법석이 없이, 좋은 화가와 사진작가들의 작품 중 알짜들만 조그만 장소에 모아놓은 것 같은 그 곳은 특히 젊은이들이 많은데, 그 곳 3층에 있는 현대작품 중 기업가의 양식에 대한 조크가 있어, 필자가 경영대학원 학생들에게 경제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의할 때 시작하는 농담으로 때때로 인용을 한다.
사업을 시작하는 아들에게 사업가인 아버지가 이렇게 말한다. “기업인의 양식이란 이런 거란다. 아름다운 여성 고객이 물건을 사고 100달러를 내고 갔는데 나중에 보니 100달러짜리 두 장을 받은 게 아니겠니. 사업을 하는 이의 양식이란, 이런 경우 이렇게 갈등을 느끼는 것이란다. 내 동업자에게 이 얘기를 해야 하나, 나 혼자 가질 것인가.”
그 여성 고객에게 돈을 돌려주느냐 아니냐의 생각을 할 것 같은 모든 이들의 의표를 찌르는 미국 농담의 전형적인 이 얘기는 물론 옛날 “장사치들”이란 말로 사업가를 비하하고 싶어 하던 대중심리를 건드리는 이야기다.
사실 동포 여러분들이 잘 아시겠지만 지금 한국사회를 보더라도 정치, 종교, 대학, 예술 이런 쪽에서 경제계보다 훨씬 더 더러운 관행이 판을 치고 사회에서 가장 글로벌 수준으로 발전해서 무리가 없는 곳이 경제계라고 보는데, 옛날의 농담은 그래도 구수하게 들리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미국 경제계의 사회적 책임 얘기가 나오면 항상 빠지지 않는 회사인 엔론의 사법처리 과정에서 양심선언을 먼저 하고 재빨리 그 이후에 “새로 태어난” 경제인으로서 인기 강연자로 변신해서 세칭 “잘 나가고” 있는 린 브류어의 처신이 대다수 경제계 인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이 사람의 원래 이름은 에디 린 모간으로 엔론에서 엄청난 부정사건에 개입된 이후 빨리 그 잘못을 회개하고 (혹은 회개하는 척하고) 그 고백을 야단스럽게 한 사람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시되는 사베인스 옥슬리 시대에 사는 우리 주위의 회사들로부터 강연 요청도 많이 받고 책을 써서 돈도 벌고 과거의 잘못을 밑천으로 아주 비즈니스를 잘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십수 명의 옛날 엔론 시대의 동료들이 공개적으로 그 사람 사기라는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부정”을 할 자리에 있지도 않았고, (힘없는 중간관리층 한직에 있던 사람이라 그런 대단한 부정을 할 파워도 없었다고 함) 그 사람의 진정성을 믿기 힘 드는 인품의 소유자란 것이다.
그런데 사실 세상의 보통사람들은 일단 회개를 하려면 회개를 크게 하는 사실에 감동을 받는 것 같고, 린 브류어도 자기의 참회 얘기가 세간의 주의를 끌려면 옛날 자기가 엄청난 부정에 연루되었다고 각본을 써야 좀 감동의 정도가 크리라고 옳게 계산을 한 것 같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아마 우리 동포들은 좀 친숙하지 않을까 싶은데, 한때 유행하던 “전직 깡패출신 목사” 얘기랑 그 맥락이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옛날 깡패노릇이 횡포하면 할수록 “새로 태어난” 인간의 회개가 대단해 보이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믿으면 좋고 아니면 할 수 없고 식의 이런 얘기들은 단기적 흥행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대다수 착한, 크게 못된 짓을 하지 않은 보통사람들에게서 오랫동안 존경을 받기는 힘들다.
인간은 크게 변할 수 없고, 한 인간의 진정성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종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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