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달이 자꾸 따라와요’ 전문

어린 자식 앞세우고
아버지 제사 보러 가는 길

--- 아버지 달이 자꾸 따라와요
--- 내버려둬라
달이 심심한 모양이다

우리 부자가 천방둑 은사시나무 이파리들이 지나가는 바람에 솨르르솨르르 몸 씻어내는 소리 밟으며 쇠똥냄새 구수한 판길이 아저씨네 마당을 지나 옛 이발소집 담을 돌아가는데

아버짓적 그 달이 아직 따라오고 있었다

달밤에 길을 가는 부자의 모습이 영상처럼 아름답다. 타박타박 앞서 가는 어린 자식과 말없이 그 뒤를 따라가는 아버지. 소년은 유난히 밝은 달을 자주 올려다본다. 몇 발자국 가다간 올려다보고, 몇 발자국 가다간 또 올려다보고. 지금은 아버지가 된, 옛날의 소년도 그러했으리라. 달을 매개로 한 삼대의 모습이 동화만 같다. 소년이 자라 또 제 자식을 앞세우고 제사 보러 가는 날 있으리라. 그때까지도 심심할 것이 분명한 달은 이들 일가를 줄기차게 따라다닐 것이고.

한혜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