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주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중
고향에 내려와
빨래를 널어보고서야 알았다
어머니가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 다는 사실을
눈 내리는 시장 리어커에서
어린 나를 옆에 세워두고
열심히 고르시던 가족의 팬티들,
펑퍼짐한 엉덩이처럼 풀린 하늘로
확성기소리 짱짱하게 날아가던, 그 속에서
하늘하늘한 팬티 한 장 꺼내들고 어머니
볼에 따뜻한 순면을 문지르고 있다
안감이 촉촉하게 붉어지도록
손끝으로 비벼보시던 꽃무늬가
어머니를 아직껏 여자로 살게 하는 한 무늬였음을
오늘은 죄 많게 그 꽃무늬가 내 볼에 어린다
……(중략)……
눈덩이만한 나프탈렌과 함께
서랍 속에서 수줍어하곤 했을
어머니의 오래 된 팬티 한 장
푸르스름한 살 냄새 속으로 햇볕이 포근히 엉겨 붙는다
나 역시도 엄마는 여자도 아닌 줄 알았다. 여자라는 이름과 엄마라는 이름을 맞바꿔버린 것으로, 여성성은 회복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러니 김경주 시인이 어머니의 꽃무늬 팬티를 알 턱이 없다. 꽃무늬 팬티의 상징성은 젊은 엄마에게나 있으므로, 늙으신 어머니가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는 사실은 충격이어야 마땅하다. 팬티의 화사한 꽃무늬처럼, 좀처럼 시들지 않는 것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성성이라는 점에 대해서 새삼 일깨워준 시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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