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선 ‘흉터 속에는 첫 두근거림이 있다’ 중
비 온 뒤 말갛게 씻겨진 보도에서
한때는 껌이었던 것들이
검은 동그라미로 띄엄띄엄 길 끝까지 이어진 것을 본다
생애에서 수없이 맞닥뜨린, 그러나 삼킬 수 없어 뱉어버린
첫 만남의
첫 마음에서 단물이 빠진 추억들
첫 설렘이 시들해져버린 것들은 저런 모습으로
내 생의 길바닥에 봉합되어 있을지 모른다
…… 중략 ……
씻겨지지 않은 것은 잊혀지지 않은 증거이다
어떤 흉터 속에 잠잠한 첫 두근거림 하나에 몸 대어
살아내느라 오래 전에 놓아버린,
건드리기만 하면 모두 그쪽으로 물결치던
섬모의 떨림을 회복하고 싶다
단물의 비밀을 흘리던
이른봄 양지 담 밑에서 돋던 연두 풀잎의 환희를
내 온몸에서 뾰죽뾰죽 돋아나게 하고 싶다
단물 다 빠진 껌을 계속해서 씹자니 아귀가 아프고, 버리려니 쓰레기통이 안 보이고. 길바닥에 눌러 붙은 껌들은 대충 그런 사연으로 버려졌을 것이다. 인생으로 친다고 해도 그와 흡사한 일들은 많다. 버린다고 버렸으나 껌처럼 눌러 붙는, 세월이 가면 갈수록 함부로 버린 날들은 상처로 도드라질 것이다. 하지만 한편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사람의 기억이란 끝까지 잔인한 것만은 아니어서, 단내 물씬 풍기던 한때를 그리워할 수도 있으니.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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