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신 ‘미래’ 전문
이슬비 내리는 날 나는 아이에게 말할까 합니다 미래는 봇물처럼 한꺼번에 터지지 않고 계곡의 푸른 솔잎에서 이슬처럼 듣던 사랑의 속삭임 고요히 바위틈을 흘러 겨울 보리밭 둔덕을 적시고 소리 없이 갈대꽃으로 피었다가 보리나 벼, 이삭으로 열렸다가 때로는 흰 눈으로 덮혔다가 마침내 깊은 바다 속 산호의 숲으로 자라나기도 하는 아주 쉬운 일들의 연속, 소문처럼 사막 속에서 진행되는 비밀의 프로젝트만은 아니라고, 비 내리는 날 우산을 소나무처럼 활짝 펴주며 나는 아이에게 봄비처럼 감미로운 말 붙일까 합니다.
이런 미래가 기다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푸른 솔잎에 돋던 한 방울의 이슬이 바위틈을 적시고, 겨울 보리밭 둔덕을 적시고, 보리나 벼 이삭으로 열리는 것이 미래라면. 당연한 우주의 원리이자 순환기적 질서지만, 이제는 이러한 미래를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오존층이 뚫리고 북극엔 얼음이 녹는 시대. 미래가 봇물처럼 터져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이 오히려 이러한 시를 쓰게 했으리라.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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