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선 ‘풍경소리’ 중에서
당신의 이름을 ‘등’이라 부릅니다
어린 저는 환한 등에 업혀 검은 산맥과 바다 건너 은하수까지 놀다오곤 했습니다
당신의 글씨체도 얼굴도 모른 채 이토록 늙은 제가 어제는 꿈에 당신을 봤습니다
여전히 지워진 얼굴,
북적대는 사람들 속 한 걸음에 달려가 껴안습니다 아, 아버지
차갑게 뿌리치십니다. 어리고 아프지 않아서 이러시긴가요? 얼굴도 모른 채
당신보다 늙은 저를 젊은 당신은 영 영 못 알아보시는 건가요?
꿈이야, 어서 깨야지 하면서도 멀어지는 등 쫓아가느라
작은 맨발은 자두 빛, 주르륵 눈물까지 흘리다 잠 깬 새벽
창가에 달린 작은 ‘풍경’ ‘찰, 찰, 찰’ 저 혼자 웁니다
............ 중략 .............
하지만 이제 저는 등이라 불리는 당신을 기다리지 않아요.
궁금하지도, 미움도 없어요 아직은 너를 모르겠노라고 외면하던 당신
바람결에야 다녀가신 살아 부르지 못한 당신이라는 등
긴 꿈에 든 찰나의 새벽 꿈속, 맑은 소리로 오셨던 아름다운 ‘등’
어리지도 아프지도 않은 지금 고이 접어 보내드립니다
은하수 너머 별빛 속으로,
시인의 무의식엔 소녀와 아버지가 산다. 소녀에게 따스하게 등을 내주는 아버지. 그때 느낌이 얼마나 선명했으면 ‘검은 산맥과 바다 건너 은하수까지’ 가서 놀다 왔다는 표현을 할까. 그날 이후 아버지는 두 개의 이미지이면서 동시에 하나인 ‘등’으로 상징이 된다. 소녀 적에 업혔던 ‘등’과 불 밝히는 환한 ‘등’으로. 오랜 세월을 흘러서야 비로소 말할 수 있는, 아버지에 대한 애증이 동시에 느껴지는 시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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