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필녀 ‘젊은 우체국장이 있는 풍경’ 중에서
우체국이 새로 생겼어요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
신호등은 없지만 무단횡단이 가능하죠
주. 정차도 할 수 있어요
빨간 우체통을 한 백 개쯤 붙여놓은 건물이에요
나는 엽서를 사러 들어갔어요
커다란 우체통 속으로 미끌어지듯이요
문을 여는 순간 꽝!
가슴에 스탬프가 찍혔어요
젊디젊은 우체국장이 앉아있지 않겠어요?
어서 오세요!
샘솟는 목소리, 그는 뱃속에 샘물이 있어요
책상이며 화분, 액자, 모든 게 새 거였고
휴지통엔 휴지가 하나도 없었어요
온도 습도가 알맞아
동양난이 촉촉하게 피어있어요
나는 주소불명의 편지처럼 어리둥절했어요
젊은 우체국장이라니,
뜻밖의 소포 같은,
축하의 전보 같은,
우체국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시인의 가슴엔 스탬프가 꽝! 하고 찍힌다. 이때부터 보이는 것은 모두가 새 거다. 물론 진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몇 십 년 묵은 책상도 새 것이라 고집부릴 태세다. 왜냐면 우체국장이 젊으니까. 뜻밖에 소포나 전보를 받은 것처럼 즐거워하는 화자의 조잘거림에 덩달아 유쾌해진다. 우체국장이 젊다는 사실만으로 이처럼 아름다운 시를 지을 수 있다니.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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