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해룡 (한인자유 민주연합 회장)
▶ 발언대
2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에 우뚝 서서 서울을 지켜보던 대한민국 국보 제1호 숭례문(남대문)이 지난 2월 10일(오후 8시 47분경)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로 변했다.
숭례문(崇禮門)은 조선 태조 7년(서기 1398년)에 세워졌고 세종 29년(서기 1447년)에 개축되었으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전화 속에서도, 6.25 전란의 포화 속에서도 굳건히 견디어 내며 600여년 세월을 한민족과 함께 명운을 같이한 민족의 얼이 담긴 나라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숭례문이 불과 다섯시간만에 화염에 싸여 무너지고 말았다. 한민족의 영광과 고난을 함께 해 온 숭례문은 민족의 자랑이자 상징이며 역사의 증언자로서 언제까지나 우리 국민과 함께 할 줄로만 알았다. 정말로 가슴 아프고 억장이 무너진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소방당국은 밤 9시 30분쯤 해서 불길이 잦아들고 연기만 나자 불이 꺼진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나 실은 남은 불길이 건물 안쪽에 감추어져 있던 것을 몰랐던 것이다. 또한 소방관들은 옛 목조건물의 복잡하고 특이한 내부구조를 잘 알지 못했고 지붕에 방수 장치가 되어 있어서 밖에서 퍼붓는 물이 안으로 스며들지 않는다는 사실도 몰랐던 것이다. 밤 10시 40분쯤 다시 불길이 치솟은 다음에야 기왓장을 뜯어내고 물을 퍼부었으나 이미 때가 늦었으며 불이 난 지 두 시간 후에야 <대전 문화재청>에서 숭례문 도면을 가지고 왔으나 이미 무용지물이었다고 한다. 600여년 오랜 세월동안 성조들의 목숨을 건 보살핌으로 보존되어 온 국보 제1호 숭례문에 고작 소화기 8대가 있을 뿐이고, 요즘 흔한 화재 경보기와 스프링쿨러 시설도 되어 있지 않았으며, 안전을 위한 인력도 낮에는 3명 뿐이고 야간에는 ‘무인 경비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어 관리가 소홀할 뿐더러 화재에는 무방비 상태였던 것이다.
불에 타서 무너져 내리는 숭례문을 직접 목격한 서울 시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영상을 통해 이 광경을 바라 본 국내외의 동포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겠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린 숭례문의 철저한 고증(考證)을 거쳐 최대한의 역사성을 살려 무너진 자리에 다시 숭례문을 복원하는 것만이 그나마 역사 앞에 속죄하는 길이 될 것이다.
2008년 2월 12일
한인자유 민주연합 회장 서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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