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나-샴페인 일리노이대 ‘한국문화대사 워크샵’
지난달 29일 일리노이대 어바나-샘페인 캠퍼스(UIUC) 아시안문화센터에서 열린 한국문화대사 워크샵은 중서부 한인 대학생들이 주축이 돼 진행했다.
이들은 워크샵에서 조기유학 문제를 토론하는 한편 1.5세와 2세 한인 학생들간 발생하는 오해와 갈등도 함께 다뤘다. 본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정체성 문제 발표는 UIUC 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고재영군과 저널리즘을 전공 중인 강남규군, 생물학과 2학년 고은익군에 의해 진행됐다.
이중 고군은 2세로서 조기유학생을 포함한 또래 한국 출신 학생들에 대한 시각을 소개했으며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있는 조기유학생 출신 강군은 ‘FOB vs Twinkie’란 제목의 영상물을 통해 조기유학생을 포함한 한인 1.5세와 2세들의 차이를 설명했다. 생물학과 2학년 고은익군은 다문화 경험자로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제3 문화적 아이(Third Culture Kid)’의 정체성 문제를 지적했다.
■고재영군: ‘인종적 정체성 형성’
UIUC 경제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고재영군은 한인 2세다. 이날 ‘인종적 정체성 형성’을 주제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했다. 그는 피부색, 언어, 외양, 행동 패턴, 문화적 가치, 사회적 표준 등에 의해 정체성이 달라진다며 이 중 특히 언어와 겉모습, 행동 양식과 문화가 한인 조기유학생과 2세를 구분하는 주요한 요소라고 주장했다.
2세로서 고군이 보는 조기유학생을 포함한 한인 1세 학생들의 모습은 ▲더운 여름에도 비니(챙이 눈을 가릴 수 있을 정도로 긴 모자)를 쓰고 다니고 ▲2세들이 일상생활 중 캐주얼한 반바지와 티셔츠 정도로 편하게 입고 다니는데 비해 한국애들은 평범한 운동회에서도 말쑥하게 차려입고 나오며 ▲문화적으로 상대를 겉모양으로 판단하곤 한다. 또 고재영군은 이민자의 출신국과 이민 대상국으로 구분, 영어가 출신국인 한국에서는 이민을 내보내는 요인(push factor)으로, 대상국인 미국에선 이민을 끌어들이는 요인(pull factor)으로 작용한다고 평가했다.
■강남규군: ‘FOB vs Twinkie’
조기유학생 출신으로 현재 UIUC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있다. 발표 주제로 한국에서 막 이민온 1세 학생(FOB)과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2세 학생(Twinkie)를 비교하는 영상물을 제작, 상영해 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다음은 강군이 주장하는 FOB과 Twinkie 구분법.
▲용어 정의
FOB는 Fress Off the Boat의 약자로 일부에서는 Boat 대신 Bihaenggi(비행기)로 쓰기도 한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아시아계를 지칭하는 용어로 예전 아시안들이 배편으로 미국에 도착하던 것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와 달리 Twinkie는 겉은 노랗고 안은 하얀 같은 이름의 과자에서 나온 것으로 아시안이 백인처럼 행동하는 것을 조롱하는 용어다. 다른 미국인들, 특히 백인들은 다 똑같은 아시안이 아니냐고 반문하지만 분명히 서로 다른 관점을 갖고 있으며 서로의 사고방식을 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다.
▲스타일로 구분
FOB과 Twinkie는 스타일로 구분할 수 있다. 일단 FOB에는 크게 2가지 부류가 있다. 하나는 공부하는 FOB이고 다른 하나는 공부 안 하는 FOB이다. 공부하는 FOB의 스테레오타입은 안경을 쓰고 깔끔한 외모에 폴로 티셔츠와 노스페이스 재킷을 입고 다니는 것이다. 항상 도서관이나 라운지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공부 안하는 FOB의 이미지는 항상 담배 물고 있으며 떼를 지어 어울려 다니는 것이다. 담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펴대면서 모자와 딱 달라붙는 진, 추리닝 등의 패션을 고집한다. 반면 Twinkie의 전형적인 스타일은 정말 간단하다. 딱 하나 스타일이 있는데 애버크롬비 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것이다. 사는 것도 평범하면서도 단순해 주중엔 학교에 가고 주말엔 교회를 간다. 또 시간이 나면 운동 등 여가활동을 즐기곤 한다.
▲예절로 구분
FOB은 선배에 대한 존경의 표시를 깍듯이 한다. 한국보다 더 심하다. 단 1년이라도 연상인 선배에게는 말도 함부로 하지 않고 항상 존대말을 쓴다. Twinkie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의’를 갖추지 않아 FOB들로부터 무례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문화적인 차이
FOB과 Twinkie는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이나 라디오 등도 다르다. FOB은 주로 한국의 오락 프로그램이나 가요에 집착하는 반면 Twinkie는 미국 프로그램을 위주로 보거나 듣는다. 교회도 FOB는 한인 1세들 위주의 교회에서 한국어로 예배를 보는데 Twinkie는 미국 교회에 가거나 영어를 사용하는 예배에 참여한다.
▲생활양식의 차이
가끔 FOB 중엔 돈자랑하는 부류가 있다. 돈이 그냥 많은 것도 아니고 럭서리 차를 산다든지 명품으로 도배를 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자랑을 한다. 그 액수가 너무 비싸 같은 FOB은 물론 평범한 Twinkie로서는 상상도 못하는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써서 위화감을 준다.
Twinkie는 같은 Twinkie가 아닌 아시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공부를 하지 않는 FOB’은 영어를 잘 하지 못해 말이 안 통하는데다가 떼지어 몰려다니면서 아무데나 침을 뱉고 담배를 핀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공부하는 FOB’과 어울리는 것도 아니다. 무미건조하게 살면서 공부만 하는 범생은 어디에서든 별로 인기가 없다.
▲FOB 부모의 특징
돈을 밝히거나 뛰어난 성적을 요구하거나, 둘 중 하나든지 아니면 둘 다다. FOB과 Twinkie를 가릴 것 없이 상당수가 FOB 부모로부터 의사나 변호사가 되라는 강요를 당하곤 한다. 그들이 원하는 건 오로지 물질적인 성공을 통해 부자가 되는 것이다.
■고은익군: ‘제3 문화적 아이(Third Culture Kid)’
UIUC 생물학과 2학년 고은익군은 다문화 경험자로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신을 ‘제3 문화적 아이(Third Culture Kid)’로 정의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총 5개의 이야기를 통해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이민자 학생의 고충을 토로했다.
▲첫번째 이야기
아버지의 일 때문에 나는 싱가포르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다시 한국에 와서 잘 지내긴 했지만 ‘급식당번’이나 ‘주번’, 혹은 급우들끼리 치고박고 싸우는 등의 몇 가지 문제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다행히도 한 학기가 지난 뒤 아버지가 다시 싱가포르에 가게 돼 혼란은 더이상 느끼지 않아도 됐다.
▲두번째 이야기
아버지를 따라 나를 포함한 온가족이 싱가포르에서 인도의 델리로 이주하게 됐다. 그런데 고교에 재학 중인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가 한국에 들어가야 하는 일이 생겼고 결국 나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도로 한국에 들어갔다. 가디언이 있긴 했지만 학교 성적만 유지되면 내 생활에 별 간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밤을 새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든 영화를 보든 모든 게 내 마음대로였다. 그러다가 UIUC에 입학하게 됐다.
▲세번째 이야기
UIUC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어느날, 친구 중 한 명이 다가와 물었다. 내가 듣기로 말투가 아시안도 아니고 그렇다고 중서부 사람도 아닌 것 같고, 또 너 스스로 시카고 서버브에 사는 것도 아니라 했으니, 맞다, 너는 캐나다 사람이구나! 이런 질문을 종종 받게 돼 항상 내가 왜 아시안도 아닌, 인도도 아닌, 그렇다고 캐나다도 아닌 억양을 갖게 됐는지 설명해야 했다. 그 전 인도 델리에 있을 땐 미국에만 가면 다양한 인종의 사람이 있어서 정체성이 불확실한 나 같은 사람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결국 착각이었다. 오히려 인도에서는 다르다는 게 특별한 것이었지만 미국에선 뭔가 불편하게 받아들여져 더욱 곤혹스러웠다. 게다가 친구들의 성장 과정은 너무나 평범했기 때문에 항상 그들에게 재미난(?) 얘기를 해주는 건 나였고 오히려 그들의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삶을 부러워하게 됐다.
▲네번째 이야기
한국어는 다른 언어와는 달리 내게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다른 한인 친구들과 한국에 대한 것은 물론 다가오는 중간고사 등 일상사를 한국어로 얘기할 때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봉윤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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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인 대학생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조기유학 및 문화적 갈등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왼쪽부터 문화원 정선희 원장, 강남규, 고재영, 고은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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