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인(1953~) ‘사과’ 전문
여름이 지나간 자리에 얼얼한 火印이 남았다
낙뢰,
그 환한 치마 속을 올려다본 순간 가을의 환영을 다 보았다
한 그루 사과나무 둘레를 오래 배회하던 하느님의 발걸음
꽃이 다녀갔다 아름다운 발자국이 다녀갔다
폭염과 태풍이 휘갈긴 일필휘지가 다녀갔다 명료한 실과 속으로
정결한 잉태와 겸손한 해산의 기억을 봉인한
붉은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세계는 아름답다고 죽도록 말해주고 싶어요.’*
유언을 남기는 것들 가까스로 다다른 중앙驛, 가을이다
* 플로베르, “인생은 아름답다고 죽도록 말해주고 싶어요, 하고 말하며 꽃들은 죽어간다.”에서.
한 그루 사과나무에 하나님이 오래 배회했던 것처럼, 열매를 맺는 것에는 오묘한 신의 섭리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중도에 툭툭 뛰어내리는 과일이 있다. 폭풍과 태풍이 찾아와도 운명이려니 여겨야 함에도 그것을 못 참고. 가까스로 다다른 중앙역에서 훌쩍 선로로 뛰어든 인생도 마찬가지다. 인생은 아름답다고 죽도록 말해주고 싶어 했던 꽃들, 선로에 몸 날리는 순간 그이도 꽃 같은 생각을 과연 할 수 있었을까?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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