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1935~) ‘낙타’ 전문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저승길에 낙타를 타고 가겠다는 이유는 뭘까? 너무나 많은 것을 보았던 생이 부끄러워서일 것이다. 그래서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순수한 낙타의 등이라도 빌려야 저승길을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면 “다시 세상으로 나가란다면/낙타가 되어 가겠다”는 해석은 조금 쉬워진다. 세상이 사막인 줄을 눈치 챘으니 이번엔 아예 낙타가 되겠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낙타가 아니고선 견디기 힘든 세상을 묵묵하게 견딘, 또 하나의 자신을 태우러 간다는 말로 읽힌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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