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나 (1965~) ‘등’ 전문
등이 가려울 때가 있다
시원하게 긁고 싶지만 손이 닿지 않는 곳
그곳은 내 몸에서 가장 반대편에 있는 곳
신은 내 몸에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을 만드셨다
삶은 종종 그런 것이다, 지척에 두고서도 닿지 못한다
나의 처음과 끝을 한눈으로 보지 못한다
앞모습만 볼 수 있는 두 개의 어두운 눈으로
나의 세상은 재단되었다
손바닥 하나로는 다 쓸어주지 못하는
우주처럼 넓은 내 몸 뒤편엔
입도 없고 팔과 다리도 없는
눈먼 내가 살고 있다
나의 배후에는
나의 정면과 한 번도 마주보지 못하는
내가 살고 있다
자신은 볼 수 없는 등을 가졌다는 것은 다행 아닌가? 쓸쓸하게 묻고 쓸쓸하게 대답한다. 다행이라고. 정면으로 볼 수 없는 등을 가졌다는 것. 쓸쓸하게 늙어가는 그의 등을 그가 볼 수 없어서 다행이다. 가렵다며 날마다 그에게 등을 들이미는 나도 다행한 일이다. 반세기를 넘게 눈 먼 내가 살고 있는, 내 등 어디쯤에 따갑게 박혀 빠지지 않는 시선은 대체 몇 개나 될까?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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