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국 (1955~) ‘씹던 껌을 씹듯,’ 전문
씹던 껌을 씹듯, 병(病)을 앓는다 그러니까,
그쪽에서도 복사꽃이 지겠다 밤새워
꽃나무에 매달려 울고불던
꽃잎들, 밥알처럼
토해놓은 꽃잎들, 봄날이 마저 데리고 가지 못한
봄꽃처럼, 병(病)을 앓는다 내가 몸을 앓아야
병(病)도 꽃피는 것, 꽃피는 한 시절의
병(病)을 앓는다 그러니까
당신네 집에서도 꽃이 지겠다 여기서
당신네 앞마당의 봄날을 견디듯
병(病)을 앓는다 빨대로 우유팩 밑바닥을 쪽쪽 빠는 것처럼
병(病)을 앓는다 그러니까, 비가 오면 우산을 펴고
날이 개이면 우산을 접는 것인데, 그러니까,
그 사이, 젖은 우산이 마를 때도 있었으니
눈먼 별사(別辭)가 땅에 묻힐 날도 있겠으니
병(病)을 앓는다 엄마에게 매를 맞고
누이를 올려다보는 아이처럼
병(病)을 앓는다 백열등 전구의
하염없이 떨리는 필라멘트처럼
꽃 필 때가 오면 잊었던 그리움도 도지게 마련. 단물 다 빠진 추억을 또 씹는다. 그 집 앞 복사꽃이 피었다 지기를 수십 번, 때마다 도지는 병은 어느덧 아편이다. 중독처럼 봄꽃을 앓고, 봄날을 앓다가 깜빡 접혀진 우산처럼 다소곳하기도 하겠으나, 봄비 소리에 화들짝 펼쳐지는 귀 밝은 그리움이여! 또 때가 왔다. 가지마다 그리움이 뽀얗게 휘어지는.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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