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인(1968~) ‘나무 빨래판’ 전문
세탁기는 베란다에서 웅웅거리며 돌고 있는데
옷 껍데기들만의 혼음(混淫)이
물살에 휘둘러지고 있는데
어머니, 돌아가시기 직전의 가슴마냥
욕실 한켠에 누워 있는
갈비뼈 한 짝, 저 가난에
내 속옷을 비벼 빨고 싶은 봄날이 있으니
새벽에 좌변기에 앉아
저 물맛도 오래 못 본 갈비뼈 위에
내 볼살이라도 덧붙여드리고 싶은데
가난은 가난해야 쓸모가 있다는 듯
갈비뼈는 더 갈비뼈답게 닳고 앙상해야
더 많이 때를 닳릴 수 있다는 듯
나무 골이 다 닳아 밋밋한 젖가슴처럼
세월의 자잘한 주름 골 다 평지로 만들어서야
아들아, 나는 해탈이 아니라 육탈(肉脫)이 즐거웠다
닳고 닳은 뼈마디 부러지는 소리로
들판의 개뼉다귀와도 노시는 갈비뼈 한 짝의 어머니,
골골마다 당신이 주름잡은 곳 어디 저 빨래판뿐이겠습니까
나 역시 어머니 돌아가시고 더 자주 뵙는다. 그래서 안다. 낡아빠진 빨래판에서 어머니 갈비뼈를 보는 아들의 마음이 어떨 것인지. 어머니들은 모두 해탈이 아닌 육탈로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맷돌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대퇴부, 아예 바람에게 구멍 하나를 내줘버린 무릎관절. 화살나무 가지처럼, 자신의 가슴에 과녁을 두고 속절없이 휘어지는 것이 세상의 어머니들이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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