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한 ‘능소화를 피운 담쟁이’ 전문
뜨겁게 데워진 돌벽 위에 손을 내밀었다
담쟁이의 망설임이 허공에서 파문을 만들었다
파란 물살에 문득 누군가의 마음이 걸렸다
능소화였다
먼저 키를 늘이는 담쟁이를 보고
봄부터 여름까지의 거리를 능소화는 헤아려 보았다
담쟁이가 가녀린 허리를 가만히 내주었다
능소화는 담쟁이 허리를 껴안고 기어올라
한 덩어리 파아란 불길이 되어 그들은 타올랐다
사나운 비바람이 담쟁이를 흔들자
능소화도 담쟁이도 함께 흔들렸다
담쟁이는 제 가슴에 붉고 커다란 꽃송이들이 자랑스러웠다
지열이 아지랑이로 피어오르는 여름날
목을 꺾고 꽃이 떨어졌다
안아주고 몸을 빌려준 마음을 알았으므로
능소화는 한두 송이 꽃이 져도, 꽃이 져도 좋았다.
능소화는 담쟁이 허리를 껴안고 올라가 꽃을 피운다. 평생 꽃 한번 피울 수 없는 담쟁이의 꿈은 그러므로 이루어진다. 사랑은 어째서 항상 절정일 때 위기를 맞아야 하는지. 사나운 비바람을 함께 견뎌냈던 담쟁이와 능소화에게 이별은 조용히 찾아온다. 사랑을 확인했기에 지면서도 행복한 능소화. 완벽한 합일을 이룬 사랑 얘기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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