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남(1957~) ‘그리운 옛집’ 전문
옛집은 누구에게나 다 있네. 있지 않으면 그곳으로 향하는 비포장 길이라도 남아 있네. 팽나무가 멀리까지 마중 나오고, 코스모스가 양옆으로 길게 도열해 있는 길. 그 길에는 다리, 개울, 언덕, 앵두나무 등이 연결되어 있어서 길을 잡아당기면 고구마 줄기처럼 이것들이 줄줄이 매달려 나오네.
문패는 허름하게 변해 있고, 울타리는 아주 초라하게 쓰러져 있어야만 옛집이 아름답게 보인다네. 거기에는 잔주름 같은 거미줄과 무성한 세월, 잡초들도 언제나 제 목소리보다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어서 이를 조용히 걷어내고 있으면 옛날이 훨씬 더 선명하게 보인다네. 그 시절의 장독대, 창문, 뒤란, 웃음소리…… 그러나 다시는 수리할 수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집. 눈이 내리면 더욱 그리워지는 집. 그리운 옛집.
우리 옛집은 눈을 감아야 더 잘 보인다. 낡은 울타리에 기대고 있던 개복숭아 꽃이 하필 흐드러지게 필 때 고향을 떠나온 탓인지, 그 꽃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지지 않는다. 기껏 자라야 매실 크기만 했던 개복숭아. 인상을 찌푸려야만 먹을 수 있던 개복숭아. 엄마의 걱정거리였던, 낡은 함석지붕은 그날 이후 더는 삭지 않는다. “다시는 수리할 수 없”어서 다행이기도 한, 잡아 흔들면 개복숭아 나뭇가지처럼 흔들리는 옛집이여!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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