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겸 ‘행복한 밥상’ 전문
어머니와 딸아이가 겸상을 하고 있다
네모난 교자상위에 엷게 그려진 문양
미역줄기 우거진 바닷말 사이로
한 무리의 멸치 떼가 지나가고
고등어 한 마리가 입을 벌린 채
멸치 떼를 쫓고 있다
난대성 해류를 따라
녹조류의 포자들이 밥상 위에서 흩어지고 있다.
슬그머니 끼어들어 저녁을 먹는다
SBS 저녁뉴스, 긴급 출동 SOS 24에 대한 보도
‘필리핀 관광을 빙자한
어느 패륜아의 현대판 고려장 충격’
어머니와 나의 눈과 귀가
TV모니터로 쏠리고 있다
순간, 어머니의 눈과 내 눈이 마주친다
잠시 침묵
딸아이는 멸치대가리를 발라서
내 밥그릇 위에 올려놓고
어머니는 고등어 살점을 떼어
내 밥숟가락 위에 올려놓고 있다.
저녁을 먹으면서 보는 뉴스는 아들을 내심 곤란하게 만든다. 필리핀까지 부모를 불러들여 돈만 갈취하고 돌보지 않는 ‘현대판고려장’에 관한 뉴스라니.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들은 공연히 죄인처럼 민망하다. 생각이 파도처럼 깜빡 다녀가는 사이, 어머니는 고등어 살점을 발라 아들 밥그릇에 올려놓는다. 딸아이는 멸치대가리를 아빠의 밥그릇에 올려놓는다. 더는 말할 것도 없다. 부모와 자식이 어떻게 다른가는 이것으로 충분하니까.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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