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물이 있는 풍경’ 전문
물은 물오리를 붙잡아두지 않는다 저 물에 잠긴 주검들이 물을 붙잡지 않듯이 물은 물오리를 붙잡지 않는다 물오리는 물의 혼백처럼 물 위에 떠 있다가 어느 틈엔가 포르릉 날아간다 그대는 지하철 역에서 화난 사람처럼 입을 무겁게 닫고 있었다 하지만 침묵이 그대 말을 붙잡던가 물가의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나무들은 바람을 붙잡은 적이 없다 하구가 언제 바다를 붙잡는 것을 보았는가 거친 하늘이 땅을 붙잡던가 우산이 흐린 날들을 붙잡던가 그런데도 그대는 오류가 그대의 삶을 붙잡고 있다고 한다 잔혹이 그대를 스치고 지났던가 무기수가 감옥을 붙잡고 있듯이 울음이 그대를 붙잡고 있다고 한다
물고기가 물을 붙잡고 있던가
우리는 물고기가 아니니
한사코 물을 붙잡는 것이다
상대를 구속하는 것은 세상에 없다. 모두는 자유로우나 스스로가 관계를 설정하고 구속될 다름이다. 물이 물오리를 붙잡아 두지 않는 것처럼, 나무들이 바람을 붙잡지 않는 것처럼. 그 어떤 오류도, 울음도 그대의 삶을 잡아두지 않는다는 말, 맞는 말이다. 아무 것에도 붙들리지 않는다는 증거를 입수하려면 공동묘지에 가보면 안다. 제 스스로 물 같은 세월을 붙잡고 안간힘을 쓰던 사람들, 모두 떠밀린 거기에 가보면 모든 건 확실해진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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