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던 여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쌀쌀하다. 더위에 지쳐서 어서 빨리 여름이 가버렸으면… 하고 노래를 불렀었는데, 스산한 바람에 다시금 지나버린 여름이 그리워 진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게 캘리포니아로 유학을 갈 계획이었던 남편은 사계절 따뜻한, 내게 딱 맞는 곳으로 데려 가 주겠노라며 이곳의 날씨를 빌어 슬쩍 청혼을 했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이곳에서 보낸 첫해를 기억해 보면, 무엇보다도 내 기억속에 남아있는 것이 정말 이곳의 날씨다. 사계절이 별다른 변화없이 그럭저럭, 그렇지 않아도 아는 사람도, 만날 사람도 없었던 내게 날씨마져도 참으로 지루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추어 있는 곳 같았다. 애써 식구들의 생일이나, 한국의 명절들을 기억하려고 하지 않으면 언제즈음인지 한국에서처럼 계절의 변화로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그래서 결혼 첫해를 양가 부모님 생신과 명절을 잊지 않으려고 달력에 열심히 빨간 동그라미를 그리며 보냈었다.
이제는 이곳의 날씨에 적응이 된 탓일까. 아님, 조금의 여유가 생긴 것일까. 예전보다 이곳의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니 말이다. 아침에는 웬지 따뜻한 국한그릇을 식구들에게 먹여야 할 것 같아, 늘 국거리가 신경이 쓰이고, 이른아침 집을 나설때 여전히 여름옷차림인 아이에게 억지로 얇은 셔츠라도 입혀 보내야 내 마음이 편안해 진다. 가을인 것이다.
지난해 가느다란 가지만 가진 정말 볼품없는 복숭아 나무를 심었었는데, 한해가 지나 올 봄에는 조그마한 열매들이 달리더니, 여름철로 접어들때는 정말 탐스런 복숭아가 적지않게 달렸었다. 복숭아 수확을 마치고 가을로 접어들어서는, 옆에 있던 사과나무에 하나하나 열매가 달리더니, 지금은 주렁주렁 먹음직 스런 사과가 달렸다. 가을을 알리는 자연의 변화가 신기하다.
아직은 이르기만 한 가을 코트를 꺼내어 멋들어진 스카프 한장과 함께 멋을 내고는 거울앞에 서본다. 여름이 아직은 남아있는터라 어색해 보이는 옷차림이지만, 이제 곧 익숙해 지겠지…
이제 부쩍 해가 짧아져 숙제 마치고 나면 자전거 탈 시간도 없다고 투덜거리는 아이를 보며 슬쩍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이제 막 가을 문턱으로 들어서며 맞이하는 싸한 가을바람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설렌다. 쨍쨍한 가을 햇볕에 이불 널어둘 생각일랑은 잠시 밀어둘란다. 그리고 짧은 캘리포니아의 가을이 가기전에 설레임으로 가득한 이 가을을 만끽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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