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늦은 감이 있다. 지난 8.15 광복절을 맞아 한국정부는 도산 안창호선생의 부인 안혜련 여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이로써 도산선생의 가족들은 적잖은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도산선생의 미국생활은 12년 남짓하다. 그 중 부인, 그리고 가족과 생활한 기간은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왓다가는 다시 타주로, 멕시코로, 파나마로 떠나셨다. 가족은 도산선생이 생존해 계셔도 모두가 생과부, 유복자 같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자녀들은 훌륭한 아버지보다는 같이 놀아주는 아빠를 원했다. 몇 해 전 따님인 안수산 여사께서 도산선생에 관한 무슨 말씀 끝에 “피안도 고집이 어디 가갔어”라고 말TMa 하시는 것을 들었다. 미수(88세)를 넘긴 나이에도 원망과 그리움의 모습이 역력히 보였다.
이러한 자녀를 거느리고 한 평생을 사신 안혜련 여사에게도 불만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항상 “나의 사랑 혜련에게”로 시작하는 도산선생의 편지들에는 아내의 사랑이 담겨 있었다.
리버사이드에서는 세탁 청소 가정부의 일을 주로 했었고, 일당이 최고인 날은 2달러였다. 그러고도 도산의 친구 이갑 선생의 병 치료를 위해 모스코바에서 미국으로 모셔오는 경비로 350달러를 보냈다. 그것은 지금의 화폐가치로 1만달러에 가까운 큰 돈이다.
중가주 리들리에서는 ‘대한인 여성애국단’을 조직해, 1920년 독립운동 기념행사에 참여했고,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키 위해 매 끼니마다 쌀 한숫갈씩 모으기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한마디로 안혜련 여사의 삶 전부가 대한의 독립을 위하는 일이었다.
오늘 저녁 옥스포드 팔레스 호텔에서 제95차 흥사단 미주대회를 개최하고, 도산선생 탄신 130주년 기념식도 갖는다. 특히 이번 행사에서는 안혜련 여사의 건국훈장 애족장 수여식을 갖는다. 지난 9월23일 LA 영사관에서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수여식이 열렸지만 이번에는 흥사단 본부 박인주 이사장과 미전역에서 모인 흥사단 단우들, LA 미주 한인사회의 여러분들을 모신 자리에서 다시 갖는다.
이창수
흥사단
미주위원부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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