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빈터 모퉁이에 돋는 햇빛을 제일 먼저 받는 바위가 있었다. 이 바위에 이웃들이 고추나 고춧잎 또는 무말랭이를 널어 말리기도 하고 찰칵찰칵 엿장수 아저씨의 연설 발판이 되기도 했으며, 숙달한 기술로 바이올린 키며 눈깔사탕이나 약 팔러오는 작은 키 러시아 할아버지의 바이올린 키는 무대가 되기도 했다. 이 할아버지는 듬성듬성 난 길게 자란 몇 개 안 되는 턱수염을 아끼고 자주 쓰다듬던 인심 좋은 아이들의 친구요, 할아버지 보는데서 눈깔사탕 한 개 집어 입에 넣어도 먹으라는 시늉한다.
앵 앵 앵 애애애 앵… 하는 바이올린 소리만 들리면 온 동네 아이들이 집집에서 뛰쳐나와 할아버지 장사 자전거 판을 둘러싼다.
사람들은 이사 가고 이사 오고 물결처럼 출렁이는데 우리 동네 ‘해 바위’는 오랜 세월동안 이사를 가거나 자리를 움직이지도 않으니 심지 굳은 우리 동네 역사 지킴이였는데 해 바위 나이가 몇 살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웃 동네 사람들이 우리 동네 마실 오면 먼저 해 바위부터 찾아 걸터앉는다. 쓰다듬고 안아주고 짓밟고 올라타고 사랑을 표시하는데 쉴 여가 없다. 동네 아이들의 숨박꼭질할 때 숨는 단골 장소이기도 했다.
버지니아 버크에 이사 온 지금 길 건너 숲 속 산책길에서 만나는 바위는 꿀밤나무 품 의지하고 오밀조밀 닮은꼴 바위들이 모여 정답게 숲을 지키고 있다. “굿 모-닝” 산책길 머리에 들어설 때마다 밝은 목소리로 즐겁게 맞아준다. 눈 코 입 없고 들리는 소리 없어도 똑똑하게 그들 특유의 정다운 여음으로 내 귓전에 울려온다. 닮은꼴로 보아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 며느리 한 집안 식구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 들을 만나기 위한 나의 산책길이 아닌데 마치 자기들을 만나러 숲속을 찾아가는 것처럼 반갑게 맞아주니 갑절로 신나는 산책길이다. 쫓겨 오는 너구리를 위해 도란도란 마주잡고 틈을 만들어 피난처가 되어주기도 하는 돌에도 피가 돈다고 한다.
숲을 찾을 때마다 도랑물은 졸졸졸 흐르며 즐겁게 맞아주고 도랑둑에 달라붙어 자라는 조무래기 잡초들은 도랑 물소리 자장가에 생글거리며 고개 숙여 삼삼한 눈매로 폭신한 푸른 흙 품에 안겨 졸고 있다. 숲 속에 누워 잠만 자는 것 같은 할배바위도 실은 많은 일을 한다. 피곤한 길손에게 쉼터를 제공하며 마음이 착해 가리지 않고 누구든지 걸터앉게 한다.
사막의 오아시스는 그늘과 물로 여행객을 소생시키고 숲 속 바위는 펑퍼짐한 얼굴로 엎드려 하늘 이슬에 젖으며 자지러지는 풀섶의 벌레소리나 개울과 시냇물 노래 소리 들어주고 마음을 오로지 하여 쓰임 받을 기회를 기다린다.
깊은 숲 속에서 길 잃고 미아가 된 사람에게 길 안내의 증표가 되기도 하며 바위끼리 연합하여 사반을 위해 집을 짓도록 집터를 만들어도 준단다. 암석에는 맹렬한 의욕과 사나운 의지가 있다는 데 아이들에게는 장난과 좋은 놀이터가 되어 북을 치듯 막대기로 두들겨 패거나 난타를 해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맞아주며 우리 아이들에게는 맷집 좋은 친구가 돼주고 있다.
생각이 깊어 어떤 비밀이든 바위 앞에서 한 말은 새어나가지 않는다. 나무들은 가을이 되면 잎들이 떨어지고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지만 바위는 추위와 더위를 탓하지 않고 변덕 부리지 않는다. 생각컨데 치솟아 올라간 키다리 나무들이 구름 꼭대기에서 생명의 춤을 마음껏 휘날림은 견고한 바위들이 땅을 튼튼히 딛고 눌러 있기 때문에 뿌리들이 뽑히지 않고 늠름히 서있을 수 있을 것이다.
푸른 하늘 두둥실 흰 구름이 하나님의 걸작마술이라면 땅에 앉아 자기를 내어주고 바위구멍에서 물을 솟쳐내어 사람과 동물에게 해갈 주는 바위… 땅에서 우리와 함께 이웃하는 그들. “내 사랑 반석”, 또 “여호와는 환란 날에 숨을 나의 반석이시요”라고 노래했다. 고요한 침묵의 웅변으로 바위의 지혜로움을 두 귀가 울리도록 우리에게 알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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