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맞이하는 그 교생실습생들 중에서도 유난히 잊혀지지 않는 마이클이라는 청년이 있다. 마이클은 나와는 무슨 인연인지, 얼마 전 내가 살고 있는 이웃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우리 학교에 오는 교생실습생들은 모두 심한 학습장애가 있고, 지적 능력은 초등학교 3학년에서 6학년 정도이다. 마이클은 내가 담당한 반에서는 처음인 남자 실습생이었던 데다 신체장애도 있었다. 누구에게나 장애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연유로 그렇게 되었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마이클에게는 남달리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다.
일곱 살이 될 때까지 마이클은 정상아였다고 했다. 영리하게 잘 생긴 그때의 사진을 마이클은 내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심하게 앓고 나서 몸의 왼쪽 부분이 마비되었다고 한다. 다행히 걸을 수는 있었지만 마비가 된 왼쪽 발에 보조기를 끼고 절룩거리게 되었고 왼팔과 왼손은 전혀 쓸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헬렌 켈러는 어렸을 때 열병을 앓고 나서 시력과 청각을 잃었지만 지적인 능력에는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마이클은 신체장애뿐 아니라 학습능력이 많이 손상되어 일곱 살 때의 모습이 아직 그대로 보이기도 한다. 마이클은 어렸을 때 유난히 레고 블럭 놀이를 좋아했는데 우리 반에 실습을 나와서도 아이들과 늘 그 놀이를 했다. 어떤 때는 아이들이 옆에 있는 것도 잊고, 일곱 살 때의 자신으로 돌아간 듯이 혼자 레고 쌓기에 열중해 있기도 했다.
마이클은 레고 놀이를 좋아하는 어린 아이 같은 면이 있는 것과는 달리,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 듣던 옛날 팝송을 좋아했다. 마이클은 교생실습을 하는 동안 누구를 만나건 첫 인사처럼 사이먼 앤 가펑클을 아느냐고 물었다. 아마 우리 나이에 사이먼 앤 가펑클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비틀즈라면 몰라도 이제 막 스무살이 된 요즘 젊은이가 사이먼 앤 가펑클을 이렇게 좋아하는 것은 좀 의외였다. 마이클은 얼마 전 자기 아버지와 보스턴에 온 사이먼 앤 가펑클의 공연을 보러갔었다고 한다.
얼마 전 마이클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마이클이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수퍼마켓에서 일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이클은 아이들을 좋아하여 내 담당반에서 교생실습을 하게 되었지만, 학교에서 일하는 것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삼년 전 우리 학교에 올 때와는 아주 다른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 때는 자신의 장애에 대해 불평을 하고 얼굴이 어두웠다. 그리고 우울증이 있어 약을 먹기 때문에 늘 피곤하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 수퍼마켓에서 일을 하고 있는 마이클을 보면, 걷는 모습도 나아지고 얼굴도 환해졌다. 내가 좋아 보인다고 했더니 일 년 전 심장마비가 왔는데, 무슨 연유인지 그 후 보조기를 끼지 않아도 걸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학교를 졸업하고 룸메이트와 함께 아파트에 나와 살고 있단다.
마이클은 이웃에 있는 대학의 Threshold라는 학습장애자 프로그램에 다니고 있었다. 그 프로그램은 2년 단기 과정으로 컴퓨터 기술, 인간관계에 필요한 기술, 건강관리 하는 법, 돈 관리하는 법, 성교육, 의료시설을 이용하는 법, 미술, 연극, 작문, 요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적성에 따라 유치원, 사무실, 가게, 양노원 등에서 실습을 한다.
마이클이 좋아하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험한 세상을 건너는 다리’의 노래 가사처럼 누구에게나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만만치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들으며 공감을 하게 되었나 보다.
마이클처럼 하루아침 일어나 보니, 불구가 되어 버린 그 기막힌 인생을 살아내기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하지만 요즘 마이클을 보면 그 험한 세상을 건너가는 다리라도 찾은 것처럼 보여 마음이 놓인다.
홍혜경. <프리스쿨 특수교육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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