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시에 리치몬드에서 뉴욕으로 가는 중국인 버스를 탔다. 고생길을 자초한 것일까. 버스 안은 다수의 흑인과 몇몇 동양사람, 백인, 그리고 히스패닉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값 싸고 시간 절약을 하는데 냄새쯤이야 라고 마음을 잡는다. 호들갑스런 중국 차장이 비좁은 차내를 왕래하며 손으로 승객수를 몇 번이나 세었다.
코끝을 벨 듯한 냉기가 감돈다. 새까만 어둠이 창들을 온통 거울로 만들어서 깨진 안전등 몇 개로도 차안을 환하게 비춘다. 여기에 미처 몰랐던 작은 세계가 펼쳐질 참인 것이다. 이 버스는 구정을 맞는 차이나타운에 승객을 내려놓을 것이며 모두가 이삼일 안에 똑같은 버스를 타고 리치몬드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 시간에 각자는 새로운 무엇인지를 뉴욕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발끝으로 부터 추위가 몸을 얼리기 전에 나는 그만 잠에 떨어지고 말았다.
새벽의 차이나타운은 어찌 이리 썰렁한 것일까. 구정을 알리는 사인도 눈에 띄지 앉는다. 살짝 덮인 눈이 더러운 길을 감추고 있다. 허드슨 강바람 추위 때문에 얼른 합승에 몸을 실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중국인 운전사는 타고 온 버스 값보다 더 비싸게 돈을 내라고 했다. 컨퍼런스가 열린 호텔은 고급스럽고 텅텅 빈 것 같았다. 리치몬드에서 온 동료가 다가왔다. 반갑다 인사하며 “어, 자네가 올 줄 알았으면 차를 함께 타고 올 텐데”라고 했다. 나는 “중국 버스를 타고 왔네”라고 대답하니 그는 한술 더 떠 “나는 기차를 타고 왔네”하며 계면쩍게 웃고 지나갔다. 내가 그 유대 동료보다 더 궁상을 떨고 있는 것일까.
나는 리셉션 때 치즈에 포도주를 맘껏 마셨다. 주위에 앉은 참석자들이 뉴욕의 유혹을 견딜 수 없어 그리니치 빌리지며 밤거리를 나서겠다고 법석이다. 포도주가 나의 몸을 덥혔다. 나는 조용히 전철역으로 갔다.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그 사람들, 뉴욕 사람들을. 수많은 인종들이 그 바쁜 삶을 살아가는. 얼굴은 창백하기까지 한, 쓸쓸하게 보이기도 하고, 두터운 출입문을 열고 어두운 가파른 층계를 오르는 고독하게 보이는, 그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전철문으로 밀려오고 또 밖으로 사라져간다.
세계의 돈이 이곳에 다 있을 듯싶은, 드높고 웅장한 건물들은 절전을 하는지 어둠속에 가려져있다. 전시해 놓은 공용들처럼 멈춰 서있는 것이다. 총총 걸음으로 앞서가는 사람들이 인형처럼 보인다. 멋지게 장식한 바와 카페 안에는 몇 명의 여행자가 졸고 있다.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맥도날드집은 동유럽에서 온 키가 커다란 젊은이들이 러시아 말로 떠들어댄다.
웬일인가, 전철 지도를 촘촘히 보고 있는 나에게 어여쁘고 정숙한 여인이 친절히 내가 갈 곳을 몇 정거장까지 세어서 일러준다. 그리고 정중히 인사하고 간다. 한 청년은 일어서서 나를 앉힌다. 나는 그렇게 노인도 아닌데. 호텔로 돌아오는 전철길에선 여인이 좁은 자리를 밀고 나에게 앉으라 권한다. 나는 마음이 따뜻해왔다. 중국 버스 안에선 흑인 젊은이가 내가 떨군 물병을 멀리까지 가서 집어다 준다. 그래 추위가 뭐람, 겨울이 길어간들 이 따뜻함이란 추위를 버티게 하고 사람에게 궁핍한 마음을 채우고 살 버팀목이 되는 것을.
아 이 추운 겨울에 따뜻함을 나눠야 할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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