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용사 워키간 거주 박익현씨 당시 체험담 소개
연합군, 4개 사단 인민·중공군과 사투
전사 4천명, 부상 1만명 적군 결국 패퇴
오는 25일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이 발발 59주년을 맞는 날이다.
59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너무도 처참한 상흔이기에 한국인들에게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동족상잔의 비극이다. 또한 4만명이상의 전사자를 낸 미국을 비롯한 UN군에게도 한국전쟁은 자유수호를 위해 목숨바친 전쟁으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매년 6월 25일이면 특히 참전용사들은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워키간에 거주하는 참전용사 박익현씨도 그중의 한명. 그가 58년전 자신이 참전했던, 한국 및 UN군이 북진을 이룩하는데 초석이 됐다는 지평리 전투의 치열함을 소개했다.
1951년 2월 13일부터 17일까지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에서 전개됐던 이 전투는 ‘누가 최후의 승리자가 될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치열함과 긴박감’으로 인해 ‘한국의 게티스버그 전쟁’(The Gettysburg of Korean War)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미 2사단 23연대 소속 위생병으로 참전했던 박익현씨의 체험담을 요약하면 1950년 11월 29일, 미 2사단은 개천과 회천 사이 청천강 일대에서 중공군의 공격으로 완전히 패자가 되어 2/3 가량의 병기와 병력을 잃고 서울로 철수했다. 그후 다시 병력을 재정비해 제천으로 이동, 원주와 제천 사이 중요한 보급로 및 태백산맥으로 진출하려는 중공ㆍ인민군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51년 1월 10일 원주 인근 야산에 진을 쳤다. 당시 원주를 점령하고 있던 적군은 제천 진격까지 시도했으나 미군이 폭탄을 투하하고 육상에서의 한국군의 선전으로 인해 일단 원주도 버린 채 횡성 북방으로 후퇴하게 됐다. 이후 미 2사단은 ‘북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보급로인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로 이동하라’는 미 8군사령관의 명령이 떨어지면서 프랑스군과 함께 연계, 역사적인 지평리 전투의 현장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다. 박씨는“당시 지평리로 이동하라는 8군 사령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2사단의 부사단장이였던 스미스 준장은 ‘우리 부대를 전멸 시킬 작정이냐’라며 매우 화를 냈다. 그 이유는 당시 지평리는 전선에서 돌출된 지역이라 적에 포위될 것이 확실했고, 또한 대다수 적군의 병력이 지평리 쪽으로 이동 중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막아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50년 2월 13일쯤, 드디어 적군의 지평리 공격이 시작됐다. 적군은 4개 사단 병력인 3~ 4만여명의 병사들을 총동원, 여러 방향을 통해 연합군(미군, 한국군, 프랑스군 등)을 압박해 왔다. 물론 연합군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연합군은 캄캄한 밤을 마치 낮처럼 밝혀주는 조명탄을 계속해서 쏘아 아군의 시야를 밝히는데 힘을 보탰으며 하늘에서는 포탄이, 땅에서는 소총과 기관총 등이 적을 향해 쉴 새 없이 날아갔다. 일단 첫 번째 전투를 끝내고 물러간 적군은 다음날 밤이 되면서 박격포를 앞세우며 또 다시 나타났다. 그 중에 한 발은 연대장과 참모들의 회의장에 떨어져 프리맨 연대장은 다리에 총상을 입기도 했다. 프리맨 연대장에게는 지휘권을 놓고 요양을 취하라는 상부의 명령이 떨어졌으나 그는‘병사들과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겠다’며 이를 거부, 지평리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일조함은 물론 훗날에는 대장으로 까지 진급하게 된다. 이틀 째 전투에서는 프랑스군의 경우 적군과 총검 육박전까지 벌이는 대접전을 펼치기도 했다. 사흘 째 되는 날은 적의 기세가 현저하게 끊겼고 그들이 쏘아대는 포성과 총성도 눈에 띄게 줄었다. 결국 아군의 지원군인 기갑연대 탱크가 적의 포위망을 뚫고 아군과 합류, 전세가 역전되면서 싸울 의사를 잃은 적군이 마침내 후퇴해 처절했던 지평리의 전투는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박익현씨는 “지평리 전투의 중공 및 인민군 전사자는 4천명, 부상자는 1만명이 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연합군 전사자는 200여명, 부상자는 400여명에 지나지 않았다. 나 역시 적의 공격을 받아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다”며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연합군은 북진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회고했다. 박웅진 기자
사진: 박익현씨가 지난 2006년 한국을 방문, 적의 집중 공격을 받았던 곳을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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