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이 수많은 사람들의 애도 속에 7일 열린 장례식과 공개 추모식을 끝으로 팬들의 곁을 떠나갔다. 추모식과 장례식을 TV와 온라인으로 지켜 본 전 세계인의 수는 오마바 대통령 취임식을 지켜 본 사람 수와 비슷하거나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6월25일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날이 갈수록 더 뜨겁게 달아올랐던 잭슨 추모 열기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잭슨 추모 열기는 우선 ‘팝의 황제’로서 그가 누렸던 인기와 음악계에 미친 영향에서 원인을 찾아 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팔린 잭슨의 앨범은 모두 7억5,000만장에 달한다. 산술적으로 계산해 보면 세계 인구 9명당 1명꼴로 그의 음반을 소지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잭슨은 음반 뿐 아니라 라이브 무대에서도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재능과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그의 동작 하나 하나에 관객들은 열광했다. 7일 추모식에서 모타운 레코드의 대부인 베리 고디는 잭슨을 가리켜 “팝의 황제라는 호칭으로는 부족하다. 그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가장 위대한 엔터테이너였다”고 말하자 스테이플스 센터를 가득 메운 추모객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냈다. 고디의 찬사에 공감을 나타낸 것이다.
하지만 잭슨의 인기와 재능으로 추모 열기를 설명하기엔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그가 겪어야 했던 비극과 고독, 그리고 한창 나이의 갑작스런 이별이 그를 떠나보낸 팬들을 한층 안타깝게 한 것은 아닐까. 1980년대 까지 잭슨의 성공가도는 거침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1993년 아동 성추행 혐의로 피소되면서 날개가 꺾이기 시작했으며 잦은 성형은 그를 가십거리로 만들어 버렸다. 결혼에도 잇달아 실패했다. 은둔 생활이 지속되면서 잭슨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약해지고 많은 것들을 잃었다. 빚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런 가운데서도 잭슨을 향한 팬들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그가 오랜 칩거에서 벗어나 런던에서 재기 콘서트를 갖겠다고 발표했을 때 팬들은 50회 공연 75만장 티켓을 불과 4시간 만에 매진시킴으로써 잭슨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다시 비상하기 직전 그는 세상을 떠나 버렸다. 그러면서 컴백 공연 열기로 달아올랐어야 할 7월이 대신 추모열기로 뜨거웠다.
잭슨은 50년이라는 결코 길지 않은 생애를 살다 갔다. 그는 천재적인 재능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가지고 있었다. 추모식에 참석한 인사들은 엔터테이너로서의 잭슨뿐 아니라 따스했던 한 인간으로서 그를 추억했다.
잭슨의 삶에는 어느 누구도 성취하기 힘든 성공이 있었고 좌절과 비운도 뒤따랐다. 만약 그가 훨씬 오랫동안 성공적인 삶을 누리다 나이가 많이 들어 세상을 떠났다면 과연 이런 추모 열기가 뒤따랐을까 싶다. 잭슨은 짧고 굵게 살다 감으로써 한층 더 지워질 수 없는 전설이 됐다. 그의 안식을 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