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로 성공한 조엘 오스틴 목사가 쓴 책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언젠가 목사님이 이중문으로 된 정부건물에 업무차 들어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목사님이 들어선 것은 두 문 사이의 거리가 무려 4미터나 떨어진 이중 자동문이었는데, 보안상 이유로 첫 번째 문이 완전히 닫힌 후에야 다음 문이 열리게 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첫 번째 문틈에 서 있는 한, 두 번째 문은 절대로 열리지 않더라는 것이다.
이곳에서 오스틴 목사는 영감을 얻어 더 나은 인생이 되려면, 누구든지 과거의 실패와 좌절감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야 인간 안에 잠들어 있는 무한한 ‘잠재력’이 깨어 활동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과거의 문을 닫아야 새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건물에 설치된 이중문처럼 우리 의식의 문도 과거의 좌절감에서 완전히 떨어져야만 앞으로 걸어갈 문이 열리게 되어 있다는 말씀이다.
인간을 내신 창조주는 우리 모든 인간 안에 무한한 ‘잠재력’을 심어 놓으셨다. 그렇기에 우리는 각자의 잠재력을 캐내야 한다. 도전 없는 삶을 사는 인생은 그래서 부끄러운 삶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럭저럭’ 살기 때문에 좋은 자질과 능력을 썩혀버리고 있다. 이것은 당사자인 개인의 손실만이 아니라 가족과 사회, 더 나아가 인간을 내신 창조주가 지닌 기대를 저버리는 배신행위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흑인이라는 불이익과 여러 가지 사회적인 차별에서 오는 절망과 분노와 좌절에도 불구하고 조물주가 심어놓은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개발해 꽃피워낸 버락 오바마의 삶은 분명 창조주께 대한 영광임에 틀림없다.
인간 삶 안에는 잠재력을 무력화시키는 수많은 복병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이 외부적인 환경에서 오는 것 일수도 있고, 자신의 내부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지간에 우리 안에 숨겨진 잠재력을 일깨우는 일은 결국 우리 자신이 해야 한다.
그래서 환경의 지배를 받고 사는 우리 인간은 잠재력을 무력화시키는 외적인 요소들을 과감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은 그래서 피해야 한다.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잠재력 개발을 파괴시키기 때문이다. 절망과 낙심으로 꿈꾸는 것을 포기하고 사는 사람과 어울리고 있다면, 언젠가는 우리의 삶도 그렇게 되어가고 만다. 그렇다면 그들을 멀리하는 것은 자신이 결정해야 할 일 아니겠는가.
그러나 실제로 외적인 요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들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것 아닐까. 환경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오바마가 나올 수 있는 것을 봐도 그렇고, 외적인 환경이 좋은데도 잠재력을 꽃피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인간은 자신감이 없으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존재다. 이 자신감은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믿음에서 나오는 힘이다. 이 믿음이 꿈을 만들고, 그 꿈 안에서 우리의 ‘잠재력’은 꽃피게 된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 긍정적 사고를 위해 교육과 좋은 사람과의 사귐과 하느님과의 만남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 아닐까.
김재동 <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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