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인가 벼르다 모처럼 시간이 나서 동네 여고 후배와 버지니아에 있는 목욕탕 스파월드를 다녀왔다. 곳곳의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물들은 나들이 나온 아이들처럼 우리를 즐겁게 했고, 어느새 마음마저 상쾌해졌다. 뜨거운 물속으로 온 몸이 미끄러지듯 들어가면 어느새 삶의 긴장감에서 풀려나서 나도 모르게 온 몸의 근육들이 자물쇠를 풀고 느슨하게 녹아 나는 것 같아 마음마저 어느새 편안해진다. 뜨거운 탕 속에서 뽀오얀 수증기들은 작은 물방울이 되어 나의 눈가를 간지럽히고, 마음은 갑자기 철없던 어린 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다. 어머니, 그날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한국에서 늙으시고 병상에 계신 어머니가 생각나 갑자기 가슴이 싸아해 진다.
끌려가다시피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가던 동네 목욕탕, 안가겠다고 생떼를 쓰면 과자나 돈을 뇌물로 달래 데리고 가시곤 했다. 목욕탕뿐이랴, 엄마 손잡고 처음 가보던 곳이... 학교도, 샤핑 센터도 그랬다.
그렇게 세상에 대해 하나씩 배워가던 시절, 목욕탕에서 정성껏 몸을 씻어 주시며 재미난 이야기도 해주시던 어머니, 따뜻한 손길이 닿는 온몸 구석구석에 엄마 냄새가 배어있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았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집에서 매일 샤워하고 탕 목욕도 하는데, 왠 때가 이리 많이 나오는지. 하기는 지난번 한국에 갔을 때 등을 문질러 주시던 아주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미국에서 온 사람들은 샤워만해서인지 대부분 때가 많이 나와서 금방 알아본다고 해서 조금 창피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여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때 빼고 맛사지까지 해서 피부가 아주 곱다고 했다. ‘누구는 시간이 많아 맛사지나 하며 시간을 보내고... 참 복도 많지. 아이구 내 팔자야.’
그래도 나는 목욕탕 문화가 있는 한국이 좋고, 어린 손을 끌고 자주 그곳에 데려가주신 어머니께 감사한다. 그런데 그렇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신 어머니에게 우리 자식들은 어째서 항상 빚 받으러 온 사람처럼 그리도 당당하고 잘난 척을 했을까. 주위에서 남들에게는 왜 그리 고생하느냐고 하면서도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끝없는 고생과 늙어 가심, 그리고 끝없는 고행은 어찌 못 본 척 외면하며 살았던가. 때로는 하고 싶은 말도 참을 수 있으련만 그렇게 모질게 어머니께 해댔는지, 새삼 후회가 된다. 내가 엄마보다 더 자식을 잘 키운다는 듯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제 자식 자랑이 끝이 없었으니. 이런 철없고, 어리숙한 불효를 어쩌나. 글쎄 그것도 이제서야 알았으니. 오늘 응급실에 간다면 내가 제일 먼저 부를 이름이 엄마면서, 그런 엄마 앞에서 콧대 한창 높이고 어깨를 흔들며 잘난 척 했던 적도 있었다.
언제라도 죄진 사람처럼 ‘많이 못해줘서 미안하다’를 외시던 어머니, 그 어머니에게 죄송한 마음과 그리움을 전한다.
정돈된 분위기의 스파는 외국인들도 많이 있었고, 소금방, 황토방 등 다양한 찜질방에서 땀을 빼며 즐길 수도 있었다. 그렇게 때 빼고 광낸 후에 여러 가지 메뉴를 갖춘 구내식당에서 시원한 냉면을 후루룩 먹고 마루가 깔린 넓직한 로비 휴식 공간 돗자리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니, 신선 노름이 따로 없는 듯 했다.
스파 목욕탕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마음은 내내 서울에 계시는 어머니께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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