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는 가을로 들어서는 입추가 유난히 빨라서 8월 초에 이미 지났었다. 가을의 문턱에 들어와서인지 이제 조석으로 제법 쌀쌀한 느낌마저 들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엊그제 95~6도를 오르내리며 우리를 괴롭혔던 폭염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가을 날씨에 저만치 물러갔다.
티 없이 맑은 가을 하늘, 마치 푸른 물이라도 뚝뚝 떨어질 듯 높푸르고 청명하기만 하다. 그 하늘 아래 내가 서 있다. 그리고 땅을 보고 하늘을 보고 나를 본다. 그 깨끗함에 나의 모습을 드러 내놓고 보니 세속에 찌든 때가 마음 깊은 곳에 덕지덕지 끼어 있다.
삶에 억눌리고 사람들에게 부대낀 상처난 자국들이 때로는 깊게 때로는 얕게 패여 있다.
인간 관계 속에 얽히고설킨 자국들이다. 희로애락의 온갖 무늬들이 뒤엉켜 있기만 하다. 어찌 나에게 만이랴. 인간끼리 부딪치며 사는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나에게는 금년이 퍽 의미 있는 해이기도 하다. 금년 1월에 환갑을 지냈기 때문이다. 해서인지 이제 70마일의 속도로 세월이 지나가는 것 같다. 인생 마무리 할 때가 되었구나 생각되어진다. 구름 한 점 없이 티 없이 깨끗한 마음, 넓은 마음, 빈 마음이고 싶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마음으로만 살아간다면 이 사회, 아니 우리 교포 사회는 밝고 명랑한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천국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크게 세 부류의 사람으로 나누어진 것 같다. 첫째 사람은 사람이되 사람답지 않는 사람이다. 이웃과 사회에 폐를 끼치며 사는 사람이다. 마치 스승인 예수님을 판 가롯 유다처럼 차라리 이 세상에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사람이다.
둘째 사람은 사람이나 단지 사람일뿐인 사람이다. 본인과 가족 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자아 중심적인 사람이다. 누구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지만 전혀 이웃에게 베풀지 못한 사람이다. 현대를 사는 사람의 대표적인 유형인 것 같다.
끝으로 사람은 사람으로서 사람다운 삶을 사는 사람이다. 자기의 희생과 헌신을 통하여 이웃에게 한 없이 베푸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많은 것 가지고 있지 않아도 자기 가진 것으로 이웃을 위해 나누어 주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비록 자기 자신이 손해를 보고 비난과 모욕을 당할지라도 은혜를 베푸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타아 중심적인 인간 본래 창조의 모습 그대로 선하게 삶을 사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사는 곳곳마다 가는 곳곳마다 작은 천국을 이루게 된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흑인들을 위해서 평생을 바쳐 희생했던 슈바이처 박사, 가장 소외되고 병들고 굶주린 이들을 위해 사랑으로 돌보며 헌신했던 테레사 수녀, 이런 분들이 가는 곳은 바로 지상 천국 그대로였다.
사람이 매일매일 삶을 통해서 크고 작은 죄와 허물을 지으며 사는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일까. 나의 작은 생각으로는 한마디로 욕심인 것 같다. 자기를 보지 못하고 남의 것만을 보고 비교하고 탐내다 보면 어느 순간 욕심에 사로잡히게 된다.
한편 ‘발전’ 옹호론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욕심이 없으면 자기발전도 없고 성공의 의지도 없게 된다고. 그러나 자기 능력을 아는 욕심하고 자기를 모르는 욕심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내 모습, 이 가을에 다시 한 번 깊이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티 없이 맑은 가을 하늘을 더 똑바로 쳐다보기를 염원하게 된다.
노진영
예일교회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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