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에 나가 모래위에 글씨를 쓰면 곧 파도가 밀려와 깨끗이 지워버린다.
사막을 여행할 때 무엇을 모래 위에 써도 바람이 한번 불어오면 곧 지워지고 만다. 그래서 “용서는 모래위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는 말이 생겨났나 보다. 우리가 주위 사람들에게 받는 은혜는 잊지 않기 위하여 돌에 새기듯이 마음 깊숙이 간직하고, 우리가 베푼 용서는 모래위에 쓴 글씨가 바람이 한번 불면 지워지듯 곧 잊어버리라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들은 반대로, 은혜는 쉽게 망각하고 우리가 베푼 은혜는 쉽게 잊지 않는 경향이 있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기가 베푼 은혜를 배반한 친구 때문에 분노하고 고통당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최근 군 복무 중에 사귀었던 내 친구도 자기가 베푼 은혜를 망각한 친구가 또 실직을 당해 직장을 알선해 주었는데 그가 다시 배반을 했다며 고통 중에 있었다.
이 경우에도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다시 용서하고 용서한 사실 자체를 빨리 잊는 것이다. 성서에서도 일곱 번씩 일곱 번 즉 490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언뜻 들으면 매우 일방적이고 불공평한 것 같다.
그렇게 자꾸 용서하라니 나만 손해 보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용서는 상대방만이 아니라 용서하는 사람에게도 축복이요, 위안이요, 해방이다.
“용서는 단지 자기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그를 향한 미움과 원망의 마음에서 스스로를 놓아 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배려이자 사랑이다.” 달라이 라마의 말이다.
용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일단 용서하고 나면, 자기 자신을 미움과 고통과 원망에서 해방 시킬 수 있다는 것은 용서가 실행하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용서하며 살아야 하는 당위성을 역설해 주고 있다.
여러분의 배우자나 자녀나 친구나 이웃이 여러분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상대를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용서를 통하여 마음의 평화를 누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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