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이 넘은 나이에 뭐하러 이민 가느냐는 친구들의 핀잔을 들으며 미국에 왔다. 그리고 한인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모른 채 도미 4개월 만에 한인연합회와 인연을 맺고 꼭 삼 년을 근무한 뒤 한인연합회와 작별을 고한다.
수많은 민원인들과의 만남에서 한인회란 누군가 필요한 정보가 있거나 도움을 청할 일이 있을 때만 대부분 찾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유급직원이지만 나름대로 봉사에도 최선을 다했다.
160번의 영사업무를 하는 동안 영사업무에 관한 답변이나, 문의전화를 받은 것만 수백 건이다. 아는 사실은 설명해 주고 모르면 물어서 알려주고, 퇴근시간 안에 올 수 없는 사람에겐 밤늦은 시간에 우리 집 앞에서 만나 미처 못 찾아간 서류를 전달한 일도 더러 있었다. 그러한 일은 조그마한 나의 성의로 상대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마다하지 않는 본인의 성격 탓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 말단사원에서 부서장까지 오른 15년의 직장 경험이 이러저러한 일 처리 과정에 도움이 된 것 같고 별 허물없이 3년을 보낸 것 같다.
세 번째 치른 ‘코러스 페스티발’의 결산을 마지막 업무로 끝냈다. 워싱턴 동포들의 최대의 축제에 보이게, 보이지 않게 뒷바라지한 주역 중 한 명이었다는 점에서는 자부심을 느꼈지만 또한 미국에 산 세월이 짧은 만큼 부족함도 많았을 것으로 안다. 허나 거기 그 자리에 있음으로써 만나게 된 사람들이었지만 넉넉한 아량으로 이해해주며 인격적으로 예우해준 분들이 있다. 살면서 오래오래 기억하며 잊지 않겠다.
한가지, 한인회에 근무한 사람으로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한인회란 정부에서 녹을 받는 공무기관이 아니요, 동포들의 화합과 친목을 도모하고 어려운 동포들을 돕자는 취지에서 자생한 봉사단체이지 권력기관이 아님에도 매 2년마다 새로운 회장과 임원이 탄생하면서 흔들리는 한인회의 단 한 명인 직원의 지위는 회칙 어디에도 없으며 그 누구도 보장해 주지 않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현실이다.
거기가 직장이라고 생계를 의존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해고당하지 않기 위하여 소신대로 대등한 인격체로 일을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가 있던 자리에서 떠날 때를 안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한인회를 떠났어야 할 시간이 조금 늦었다는 후회가 들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때가 있는 법, 하늘이 점지해 준 시간이 지금인지도 모른다.
기회의 나라 이 미국에서 두 번째 기회가 나에게 왔는가 보다. 기쁘게 받아들이며 다시 한 번 그 동안 저를 믿어주고 예우해준 분들께 감사드리며 그 동안 내 집 살림보다 더 정들었던 한인연합회의 발전을 기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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