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간호사들과 함께 다운타운 홈리스들을 찾아갔다.
지난 주 내내 환자들이 가고 난 시간에 우리는 모여서 선물 꾸러미를 포장했다. 따뜻한 양말과 치약과 칫솔, 달콤한 스낵들, 하루 전날에는 가장 알맞게 익은 바나나를 박스로 구입하여 정성껏 나누어 담았다. “자아~ 내일 아침에 일찍들 나옵시다!” 새벽 6시에 오피스에서 만나 같이 떠나기로 했다.
다운타운 부근. 이미 이곳에서 사역하시는 김수철 목사님(소중한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사역을 하는 한인침례교회 교인들이 나와서 예배 준비에 열심이다. “내게 강 같은 평화~ 내게 강 같은 평화~.” 11월의 추운 아침, 찬양을 부르고 홈리스들과 악수를 나누고 간혹 낯익은 홈리스들과는 안부도 묻는다. 아직 여기 계시는군요, 라고 속으로만 생각한다. 지난번 만났을 때보다 더 낡아진 옷, 더 길어진 수염, 더 퀭해진 두 눈…. 그러나 어디서 얻었는지 모자 하나는 제법 새 것을 걸치고 있다. 다행이다.
어쩌다가 한 번씩 음식 나누는 자리에 나가는 나는, 이분들의 얼굴을 일일이 기억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 분들의 얼굴은 기억한다. 사연이 얼마나 많았을까. 변명할 이유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그러나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젯밤 그들에게는 차가운 바람을 막아줄 잠자리가 없었다는 것, 그리고 이 아침에도 그들은 배가 고프다는 사실만 내게 다가올 뿐이다.
이리로 오십시오. 한인 형제에게 다가가 따로 불렀다. “양말이 더 필요하시면 원하는 만큼 가져 가십시오.” 내가 권하자 두 손을 저으며 마다한다.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도 필요할 텐데요. 하나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기억하는 또 한 분의 한국인 홈리스는 주로 코리아타운 북쪽에서 만난다.
나이조차 알아볼 수 없어진 더부룩한 머리와 수염, 어깨 위에 끌고 다니는 더러워진 이부자리, 때로는 맨발, 때로는 뒤축 없는 낡은 가죽구두…. 어느 날 나는 이분에게 커피를 사다 드렸다. 크림과 설탕을 주니 작은 목소리로 “블랙” 하고 이야기 한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돌아서려는데 이 분의 목소리가 나의 귀를 붙든다. “감사합니다.”
지난 달에는 한인 홈리스 형제를 오피스에 데려다가 이를 고쳐주었다. 다른 환자들이 꺼려할까 봐 제 시간에 부르지 못하고 진료가 끝난 밤에 통증에 시달리는 잇몸을 치료했다. 어디에 가서든 얻은 음식이나마 잘 드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랜 홈리스 생활 동안 노인이 되어버린 한인 한분에게 틀니를 만들어 드렸더니 두어 달 만에 잃어버렸다며 다시 찾아왔다. 이들은 마약으로 인생의 밑바닥을 가게 된 분들이다. 또 다른 한 분은 이제 정신마저 맑지 않다. 찾아와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 약은 끊었어요, 하고 덧붙인다. 나는 마약재활센터까지 갈 차비를 마련해 주거나 음식을 사다가 대접한다.
나는 이분들의 인생을 다시 시작해 볼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한다. 잘못 끼워진 단추를 찾아 처음부터 다시 단추 끼우기를 시작해 보듯이.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처럼 말이다. 처음에 찾아준 루트를 무시한 채 운전자가 제 멋대로 딴 길로 가면 내비게이션은 잘못 들어선 자리를 어떻게 알았는지 다시금 ‘리-라우팅’(rerouting, 다시 여정을 변경하다)을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 들어선 길을 리라우팅 하는 데 관심이 있으심을 믿는다.
김범수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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