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동각과 우물이 마을 한쪽 켠에 같이 있어서 참 편리하게 오순도순 사는 마을이 있었다.
매해 가을걷이를 하고나면 집집마다 쌀 두어 되씩을 `이정세`로 갹출해서 마을 제경비와 수고한 이장의 수고비로 지출하고 정월 대보름날에 온 동네가 그곳에서 대동계로 마을잔치를 했던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세월이 흘러 신작로가 생기고, 그 위에 시멘트 포장도하고 해서 집집마다 자동차까지 사들이고, 농산물 가공단지도 들어서서 대처에서 주문이 들어오고 일손이 딸리면서 새로 운 사람도 자꾸 늘어났다. 이장은 농사일을 더 이상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바빠졌고, 그마저도 손이 딸려서 부이장도 두어야 했다. 나중에는 나라에서 월급도 나오는 관료자리로 바뀌다 보니 이제 서로 이장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생겨서 매년 이장을 선출해야 될 상황이 되었다. 여기까지는 부락이 발전하고, 인심이 나서 사람들이 더 들어오고 모든 게 좋게 만 보였다.
하지만 오가는 차량들 때문에 마을 고샅의 길들이 예전에 비하여 비좁아지고, 동각 주변은 다방과 슈퍼마켓이 들어서서 차 때문에 옴짝달싹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요, 아침, 저녁 시도 때도 없이 질척거리고 소란스러운 장소로 변해 버렸다. 모두가 문제라고 생각했고 묘수가 떠오르지 않던 차에 우물은 함부로 옮길 수가 없으니 동각을 옮기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 서로가 공감했다.
일을 착수해서 동각의 기초를 거의 닦고 기둥을 세우려는 차에 우물가에 살던 새로 선출된 이장이 동각과 샘터가 떨어져 있으면 불편하다면서 동각같이 짓되 농기구 창고나 보다 생산적인 박스 공장으로 용도 변경 할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고 의견을 내 놓으니 조용하던 동네가 온통 시끌벅적했다.
우리 모두는 운명적으로 부모 없이 태어 난 사람은 없다. 자식을 두고 말고는 각자의 선택사항이라지만 후손도 두는 게 자연스럽다. 태어난 근본을 부정하면서까지 가풍을 뒤엎는 경우, 선조와 조상을 무시하고서야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정도로 세상의 지혜가 얇은 사람이라면 자신 또한 그런 일을 당해야 마땅하겠으나 자신의 배경을 자기가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그것을 감춰 줄 자신의 분신인 자손들에게 철저하게 자기화를 강요하고 후환 예방에 인생의 황금같은 후반을 걱정과 우려로 지내다 불행하게 세상을 마감한다.
직장에서의 전임자와 후임자, 조직이 파탄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을지라도 후임 맡은자의 생각으로 사소한 문제들을 끄집어내 전임을 깎아 내려야 내가 살고, 전임자 또한 `내가 이걸 했다’라는 공명심과 불필요한 공치사로 후임자에게 부담을 주고자 한다면 성숙된 조직문화의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겉으로 하는 인사치레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진솔한 마음으로, ‘당신에게 물려주게 된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너무나 좋은 업적과 문화를 제게 물려 주셔서 부담됩니다만 기대에 부응토록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하면 어떨까. 같은 시간에 같이 일하지 않지만 같은 일을 하면서 그렇게까지 물고 뜯고 하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상생할 수 있는 길이 그렇게 어렵지 않아 보이는 데, 내가 세상을 너무나 순진하게 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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