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라는 영화를 인터넷으로 보았다.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유태인수용소에 같혀 있는 한10살짜리 소년과 그 수용소 근처의 저택에 살던 수 용소 소장의 동갑내기 독일인 아들의 이야기다. 외떨어진 곳이라 친구가 절실히 필요했던 두 아이들은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자연스럽게 가까워 진다. 배고파하는 친 구에게 빵을 날라다 주며 말동무가 되었지만 겁이나서 얼떨결에 한 거짓말의 대가로 아픔을 겪어 내면서도 둘 사이의 우정은 커 간다. 그러던 중 작업을 나갔다는데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는 수용소 소년의 아버지를 같이 찾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드디어 철조망 밑을 판다. 가까스로 수용소 안으로 기어 들어 온 소장의 아들은 친구와 똑같은 줄무늬 파자마로 갈아 입는다. 가는 날이 장날 이라고 두 소년은 갑자기 불어대는 호각소리에 몰려 집단 샤워실같은 독개스실로 들어가 이유도 모르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개스실 속에 아들이 있었다는 현실앞에 무너져 내리던 독일인 소장은 과연 무 엇을 생각했을까.
요즘에 와서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에 참 많이도 자리 잡아 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어른들 사이에서도 퍼 져가는 ‘은따’ ‘왕따’같은 “따”가 그렇고 알게 모르게 쌓는 “벽”이라는 것도 그렇다. 무서운 일이다. 생각을 해 보면 따나 벽이란 누군가를 참으로 가슴아프게 하는 일 들 이다. 38선, 베르린 장벽, 눈물의 벽, 만리장성, 정치의 벽, 언어의 장벽, 종교의 벽, 문화의 벽, 그리고 자연 재난이라는 엄청난 벽이 그렇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르는 미 움이나 차별의 벽이 그렇다. 어느 하나 무서운 댓가를 치르지 않는 것이 없다.
분명히 달랐던 두 소년도 줄무늬 파자마를 똑같이 입었을 때와 그 옷을 다 벗었을 때 만은 어느 누구도 그들의 다른점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 옷이 입혀졌다는 하나의 이유만으로 죽음의 문 안으로 밀어 넣어 졌고, 그들의 삶과 죽음은 이리도 쉽게 판가름이 났던 것이다. 따나 벽이 줄무늬 파자마와 다를 것이 무얼까. ‘나’만 아니면 된다는그 조금 모자라는 생각 하나로 내가 오늘 쌓아가는 벽이 언젠가 내 앞으로 와르르 쏟아져 나 자신이 그 밑에 깔려 버린다면, 그때 내가 흘리는 눈물을 보고도 나와 같이 울어 줄 사람이 과연 있을지는 의문이다. 마치 소장의 눈물을 보던 때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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