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sh… 청명(신선)하다는 뜻의 영어단어다. 사람들은 누구나Fresh 한 것, 즉 신선한 것을 좋아한다. 4월의 하늘처럼 청명한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입안 가득히 번지는 아카시아 껌, 4월의 라일락… 무더운 날의 청량음료… 많은 것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요즘 들려오는 오은선 산악인의 안나푸르나 정복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여성 산악인으로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모두 정복했을 때의 기분이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Fresh한 영혼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아닐까? 정복자의 황홀… 닐 암스트롱, 콜럼버스, 아문젠… 모두 Fresh한 순간을 맛봤던 기막히게 운좋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조금 다르게도 오페라 ‘투란도트’를 봤을 때 Fresh한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오페라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1막 마지막 장면, 티무르 왕자가 거대한 징을 울리는 순간이었다.
딩, 딩… 고막을 찢는 듯한 징소리가 황홀하게 가슴에 와 닿았던 것은 바로 그 순간이 티무르가 죽음을 결심한 순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유는 바로 티무르가 투란도트 공주에 반했기 때문이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 아니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얼마나 환희로 가득 찬 삶을 살 수 있을까? 꿈이 없는 자는 정복의 환희도 결코 맛볼 수 없다는 것은 진리일 것이다.
꿈꾸는 자의 황홀을 이야기할 때 나는 가끔 베토벤을 연상한다. 베토벤이 귓병으로 고생하며 음악에 대한 꿈을 접어야했을 때 그가 느꼈던 절망은 어떤 것이었을까? 음악이 주는 황홀한 도취… 지상에 존재하지 않은 것… 풋치니가 그려보고 싶은 것은 바로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신비한 투란도트(공주)의 이야기… 결코 가보지 못했던 신비한 동양… 그 전설을 그려보겠다는, 풋치니의 가슴 속에 동당쳤던Fresh한 느낌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그런데 같은 음악가로서 베토벤에게는 그런 꿈이 허용되지 않았다.
환상이니 꿈이니 하는 희망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차가운 운명만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스스로의 음악도 명확하게 들을 수 없었고, 청중의 박수 소리도 먼 환청처럼 가물가물할 뿐이었다. 돌파구는 오직 하나. 버림받은 자가 오히려 꿈을 선사해야하는… 홀로 서기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운명의 힘도 신의 도움도 아닌 오직 자신의 의지밖에 없을 터였다. 그의 일그러진 가슴에는 어쩌면 분노가, 아니 피흘리는 상처만이 십자가처럼 높이 들려올려졌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예전의 그는 이미 오래전에 시체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억하라, 성자는 오직 고통 속에서 만이 탄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저주(버림)받은 것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람, 그것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성자의 마음에서 만이 가능하다할 것이다. 음악이 그에게 있어 운명의 조롱거리로 전락했을 때 그는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음악을 사랑했는지를…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운명의 쇠사슬에 놓여있는 인류에게 위대한 광채를 뿌릴 수 있는 것인가를… 그는 어두운 절망 속에서야 비로소 영감받을 수 있었다.
악성 베토벤… 그의 음악을 듣고 꿈이 없다고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또 어둡고 부패했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운명(교향곡 5번) 등의 우렁찬 행진 나팔소리야말로 진정한 승리… Fresh한 영혼만이 느낄 수 있는 환희이자 정복자의 그것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남 보다 높이 오른 자, 성공한 자에게 큰 위대성을 부여하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 위대한 사람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제아무리 어려운 일에 맞닥뜨리고, 어떠한 상황에 부딪쳤어도 소위 원점으로 돌아오는 순발력있는 첫 걸음, Fresh Start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사실은 진정한 구도자다. 위대한 사람이란 늘 넘어져도 또다시 일어나 Fresh Start를 할 수 있는 사람, 이른바 오똑이들이다.
베토벤이 남긴 가장 유명한 교향곡은 5번 ‘운명’이다. ‘운명’이란 이름은 베토벤이 운명이 이처럼 문들 두드린다’라고 말했다는 데서 기인했다지만 확실치는 않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운명’이라는 별칭보다는 그저 5tjh 교향곡이라고 부른다. 따따따 따-- ! 이 네 마디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운명의 노크 소리로 들릴 수 있겠지만 그저 길바닥에 굴러다는 그런 흔할 소리일 수도 있다. 또 자세히 들어보면 운명의 어둡고 진한 무게로 짓 누른다기 보다는 훨씬 가벼운 소리다. 무엇을 뜻하고 있는 것일까?
괴테는 운명을 듣고 ‘천장이 마구 무너져 내리는 것 같군’했다고한다. 베를리오즈는 그의 음악선생이 베토벤에게 적개심을 품고 ‘이 같은 음악은 더 이상 작곡되어서는 안될꺼야’ 하자 ‘염려마십시요. 다른 사람이 그런 음악을 작곡할 염려는 전혀 없을 테니까요’했다고 한다. 당신은 어떠십니까? 마구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어딘가 마음을 Fresh하게 만들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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