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걸었던 잔디 위를 오늘도 다시 걸어 본다. 같은 장소, 같은 잔디 위인데 걷는 기분은 다르다. 생각도 다르고 행동도 다르다.
짧은 잔디, 긴 잔디, 숲속, 나무 밑, 물을 건너고 모래밭을 넘어 조그만 호수 옆을 지나노라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대자연에 흠뻑 빠져들게 마련이다. 이렇게 아름답고 웅장한 대자연 속에서 자신을 생각해 본다. 자연 속의 자연인 그것은 ‘선한’ 사람이다.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인간 본연인 ‘선’과 ‘사랑’의 마음을 지닌 사람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 아닌가?
오늘은 특별히 몇 년 전 일을 생각게 하는 하루였다. 우리 부부, 그리고 어느 유명한 언론인 부부와 같이 골프 라운딩을 했다. 세 사람은 공을 제대로 맞춰 보려고 애를 쓰는데 동반한 부인은 깊은 상념에 쌓여 있었다. 공이야 어디로 가든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하늘을 쳐다봤다, 숲속을 봤다 하고 어느 때는 혼자서 빙그레 웃는 모습도 보였다.
100달러를 내고 치는 공인데 저렇게 치나 하고 말없이 내 공만 치고 몇 홀을 지나가려니 바람이 세차게 불어 가랑잎이 수없이 날아와 마치 소나기가 오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때서야 이 부인이 말문을 열었다. “아, 갈색 소나기까지...”
나는 그날 이후 이 말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
문학 공부를 한 이 부인은 골프를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 대자연 속에서 자연인 자기 자신을 생각하기에 골몰했던 것이다. 대자연 속에서 머리 아픈 사회생활 보다는 대자연에 파묻혀 자기 본래의 자연인을 찾아보려 노력했던 것이다.
‘고독한 산보인의 명상,’ ‘참회록’ 등과 같은 대작을 남긴 철학자요 사상가인 루소는 근대 기계 문명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정신적 영향을 준 사람이다. 그는 걷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의 독백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혼자 도보로 여행을 할 때 나는 풍부하게 생각하고 풍부하게 존재하고 풍부하게 산다. 감히 말한다면 풍부하게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도보는 나의 사상에 활기를 주고 생생하게 만든다. 나의 정신을 움직이기 위해서 나의 육체는 움직이고 있어야 한다.” 정말로 감명 깊은 말이다.
거의 매일 골프장에 나가 푸른 잔디밭을 밟아보지만 돌아올 때는 아쉬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걸으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인생. 앞에 늪이 없었으면, 공이 물속에 빠지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지만 제멋대로 날아가는 것이 공이다. “아, 갈색 소나기”라고 감탄했던 그 친구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 있어 오래 오래 기억된다. 루소가 지금 나와 같이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잔디 위를 걷고 있다면 하는 느낌 말이다.
지금 우리는 찬란한 문화와 문명 속에 살아가고 있다. 결코 자유롭게 생각하며, 행동하며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인간 본연의 모습은 선이다. 사랑이다.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원래 모습인 ‘선, 그리고 사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한 조건이 된다. 짙은 초록색 잔디밭을 걸어보자. 갈색 소나기를 맞아보자.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보자.
정영희
중앙결혼정보센터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