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시대를 맞아 노인운전 문제가 미국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2010년 미국 내 65세 이상 인구는 3,900만명, 20년 뒤인 2030년에는 7,000만명에 달할 전망이다. 현재 65세 이상 운전자는 전체의 15% 수준이지만 2025년에는 25%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자동차 없이는 못 산다’는 미국문화 특성상 나이에 상관없이 운전을 해야 자유로운 생활이 보장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각 주정부와 정치권은 고령운전자들의 운전을 막을 수가 없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신체기능이 저하돼 교통사고 발생 때 큰 부상을 입거나 사망할 확률이 높다. 노인운전자들의 현주소를 진단해 본다.
음주·난폭운전 젊은층보다 훨씬 낮아
연령으로만 안전운전 기준은 무리
건강·교통위반·가족들 판단 등 고려를
■노인 운전자는 ‘도로의 무법자’?
2003년 7월 86세 남성이 승용차를 몰고 샌타모니카 파머스 마켓 안으로 돌진해 10명이 숨지고 63명이 중경상을 입은 대형 참사, 2006년 5월 달라스의 교차로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여고생의 차량이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돌진한 90세 할머니의 승용차에 받혀 여고생이 사망한 사고, 2009년 6월 매사추세츠주 캔턴에서 길 건너던 4세 소녀가 89세 운전자가 몰던 차량에 치여 목숨을 잃은 사고 등 몇몇 노인관련 대형 사고는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노인들은 매스컴을 통해 부각되는 것처럼 운전을 피해야 할 ‘도로의 무법자’인가?
각종 통계자료를 보면 가장 사고위험이 높은 연령층은 틴에이저, 가장 안전한 연령층은 64~69세로 나타났다. 65세 이상 운전자는 16~20세, 21~34세에 이어 세 번째로 위험성이 크다. 노인층은 중년 및 젊은층보다 음주운전자 비율이 낮고 과속, 난폭운전도 훨씬 덜 한다.
연방 고속도로 교통안전국(NHTSA)에 따르면 2008년 미국에서 교통사로 사망한 65세 이상 운전자들의 혈중 알콜농도(BAC)를 분석한 결과 5%만 법정기준치인 0.08을 초과했는데 이는 16~20세 사망자(17%), 21~34세 사망자(32%)의 법정기준치 초과율을 훨씬 밑도는 것이다.
잰 멘도사 가주차량국(DMV) 대변인은 “노인 운전자의 상당수는 야간 및 장거리 운전, 프리웨이 운전을 피하고 다른 연령층보다 훨씬 신중하다”며 “고령자들은 다른 운전자들에게 위험을 초래하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찰리 페너 DMV 행정감찰관은 “나이만으로 당사자의 안전운전 능력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며 “노인들의 운전거리가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위험한 운전자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2008년 미국에서 18만3,000명의 노인들이 교통사고로 부상을 당했으며 이는 전체 부상자의 8%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 기간 노인 교통사고 사망자는 5,533명(14.8%)으로 노인 사고는 주로 낮 시간(80%), 주중(72%), 자동차 간의 사고(69%) 형태로 발생했다.
■나이 들수록 교통사고 사망률 ↑
연령에 상관없이 운전자가 1년 내에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당할 확률은 3,690분의 1이며 65세 이상 운전자는 이보다 낮은 5,789분의 1이다. 그러나 65~69세 6,703분의 1, 70~74세 5,941분의 1, 75~79세 5,493분의 1, 80~84세 5,131분의 1, 85세 이상은 4,672분의 1로 나이를 먹을수록 사망 확률이 높아짐을 볼 수 있다.
85세 이상 초고령자의 운전마일 당 교통사고 사망률은 25~69세보다 무려 9배나 높다고 NHTSA는 밝혔다.
나이가 들면 시력, 청력, 판단력, 순발력, 집중력 등이 약해져 운전에 악영향을 받는데도 일부 노인들은 이런 약점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 운전대를 잡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초기 치매진단을 받은 노인의 35~40%가 손수운전을 하는 것으로 드러나 경종을 울리고 있다.
조성운 비자운전학교 교장은 “한인노인 중 상당수는 학교 픽업 등을 위해 어린 손자손녀를 태우고 차를 모는데 학교 주변에는 항상 사고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조언했다. 노인들의 주요 교통사고 형태는 교차로 사고로 70세 이상 노인 사망사고의 40%를 차지, 35~54세의 23%보다 월등히 높다. 특히 교차로에서의 좌회전 중 사고발생률은 65세 이상 운전자가 젊은 층보다 3배 정도 높은데 특히 좌회전 신호가 없는 교차로가 노인들에게 위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18개주 노인 면허갱신 주기 앞당겨
전문가들은 사고위험이 높은 노인운전자를 규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본인이 직접 차량국을 방문해 운전면허를 갱신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50개주 가운데 운전면허 최고연령 제한 규정을 둔 주는 없지만 18개주가 노인들의 면허갱신 주기를 짧게 하고 본인이 차량국을 방문해 면허를 갱신토록 조치하고 있다.
가주의 경우 면허 갱신주기는 5년으로 70세 이상 운전자는 면허갱신 때 본인이 직접 DMV를 방문, 필기시험과 시력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기본적인 시력검사(통과기준 20/40)에서 떨어져 검안의의 정밀검사를 받아야 할 경우 시력이 20/70이거나 이보다 양호한 사람에 한해 30일간 유효한 임시면허증이 발급된다. 검안의 리포트를 제출한 뒤 실시되는 시력검사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주행시험을 치를 수도 있으며 차량국은 모든 검사결과를 종합해 정규면허 또는 제한적 면허(갱신주기가 짧고 지정된 지역이나 시간에만 운전할 수 있는 면허)를 발급한다.
가주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노인 운전자의 안전확보를 위해 노인들을 대상으로 안전운전 요령과 운전을 그만둘 경우 대체 교통수단 이용법을 교육하는 ‘시니어 옴부즈맨’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일리노이주의 경우 일반적인 면허 갱신주기는 4년이지만 81~86세는 2년에 한번, 87세 이상은 매년 면허를 갱신해야 하며 75세 이상은 갱신 때 시력검사와 주행시험을 치러야 한다.
■최종판단은 본인의 몫
신체기능 저하를 자각하거나 가족들의 권유, 경제적 부담 등의 이유로 자발적으로 운전대를 놓는 노인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유’와 ‘독립’을 포기하기 싫어 계속 운전을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최근 교통사고를 일으켰거나 ▲운전 중 자주 길을 잃어버리거나 ▲최근 교통위반 티켓을 받았거나 ▲가족이나 친구가 운전방식이 불안하다고 지적했거나 ▲주치의나 경찰관이 더 이상 운전하지 말라고 했을 경우 미련 없이 운전을 포기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1979년 미국에서 처음 운전면허를 취득한 고행주(87)씨는 “프리웨이는 가끔씩 타지만 모르는 길은 다니지 않고 차 시동을 걸기 전 액셀과 브레이크 페달을 한 번씩 밟아보는 등 최대한 안전운전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90세까지 운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성훈 기자>
LA 다운타운 노인아파트에 사는 고행주(87)씨가 친구를 태우고 운전을 하고 있다. <왕휘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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