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여름. 찌는 듯한 더위는 가까운 사람들의 대화에도 짜증이 절로 나, 불쾌지수란 숫자가 까맣게 춤을 추며 치솟던 어느 날. 고등학교 동창생인 아주 가까운 친구가 찾아와 사업 확장을 하려는데 자금이 모자라 은행에서 융자를 얻어 쓰려는데 날 인우보증으로 세우겠다는 일방적인 부탁으로 나를 괴롭혔다. 다부진 성격이 못 된 난 친구의 눈물을 보고서야 겨우 승낙을 하고 아주 큰 액수의 대출 신청서에 날인을 하고 말았다.
그 후 그 친구는 IMF를 당했고, 나 외에 다른 사람에게 빚이 많은데다 아랫사람의 농간에 빠져 업무상 횡령이라는 죄까지 짊어지고 철창신세를 지게 됐다.
나는 친구 덕에 월 급여에서 상당한 금액이 이자로 빠져나가 가족들에게 얼굴도 못 들고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했던 다음 해에 약한 중풍 증세까지 얻어 가지고 출소했다는 그 친구 전화를 받았다.
출소는 했으나 면목 없어 찾아오지 못한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나는 괴로웠다. ‘만나러 가야하나’ 아니면 ‘만나지 말아야 하나,‘ ‘용서를 하여야 하나,’ ‘용서를 하지 말아야 하나.’ 용서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스스로 괴로워하던 내 마음과 며칠을 싸우고 또 싸웠다.
뜻밖에도 이야기를 들은 내 아내의 ‘나보다 더 진한 용서’가 나를 붙잡아 세워 주었다. 나는 갑자기 전에 읽었던 성경의 말씀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이었다.
얼마 후 나는 베드로의 눈물이 어떤 의미인지도 알 것만 같았다.
하루 밤새에 예수를 세 번 배반한 베드로의 눈은 한 평생 눈물로 짓눌렸고 그의 입은 한 평생 ‘용서’란 단어를 되씹었다고 한다.
나는 선량하고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는 것을 원치는 않지만 내 안에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용서가 불가피하다는 뉘우침은 언제나 마찬가지였다.
모든 심판은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이 생의 ‘죽음의 행진’을 하고 있는 건 용서의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일 것이다. 불가능 속의 가능, ‘무’에서의 ‘유,’ 그것이 용서다.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건 바로 용서하는 것일 것이다.
바람은 밖에서 부는 것이 아니라 내안의 격정(激情)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다. 악마가 지닌 가장 큰 두려움은 인간이 ‘용서할 줄 아는 존재’라는 것이다.
마침내, 나는 새로 이사했다는 그의 조그만 셋집을 찾아가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모든 것을 용서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하고 머리가 가벼워졌다. 친구는 살아가면서 조금씩이라도 갚으려고 한다며 몸이 이렇게 말을 안 듣는다며 울먹였다.
나는 친구의 어깨를 부둥켜안고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야, 그 돈은 걱정하지 말게... 나는 그래도 월급이라도 받지 않나?”
몸이나 건강 하라며 내 지갑에서 집히는 대로 지폐를 집어, 뿌리치는 친구에게 건네주었다.
그의 집을 나서는데 어둠이 깔리는 황혼 빛에 나를 감싸주는 대지는 한결 무거운 것 같았다.
뒤를 돌아보니 연립의 창문에서 그 친구의 또 다른 허상이 나를 뚫어지게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 며칠을 참았던 긴 숨을 한꺼번에 길게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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