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풀밭 운동장에
그물망을 치고 공차기 놀이한다
공 하나에 아이들 눈과 구경꾼들의 눈이
공 안으로 다 들어가
더 이상 공은 공이 아니다
사람들 마음이 하늘과 풀밭 사이로
오르내리다 간단히
공속으로 들어가 버린 게으른 오후
공 하나에 맘을 집어넣을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아이들이 뛰다 네댓 명 한꺼번에 넘어질 때
풀잎들의 허리가 후두둑 꺾인다
애들 대신 다쳐주고
눈 못 뜨는 풀잎들
반나절이 넘도록 일어나지 못 한다
풀밭에 내동댕이친 책가방
다시 둘러메고
집으로 가는 아이들과 운동장 떠나는
구경꾼들의 웃음소리가
풀씨처럼 아주 가볍게 날아간다
오문강 (1941 - )
이 시의 화자는 거북이다. 특별한 시선으로 아이들이 공차기 하는 걸 바라본다. 조그만 공 하나에 아이들과 구경꾼들의 모든 눈과 마음을 빼앗아 집어넣어 버리는 공의 힘은 무엇일까 의아해 한다. 아이들이 넘어졌을 때 대신 다쳐주는 풀잎들도 이 거북이의 눈에 들어온다. 우리의 삶을 한걸음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시다. 월드컵의 열광도 풀씨처럼 가볍게 날아가는 걸 이 거북이는 보았을 것이다.
김동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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