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열린 극단 LA 주최 ‘문화인의 밤’은 여러모로 뜻 깊은 행사였다.
“이민 100년사에 기록될 역사적인 날”이라고 감격했던 이자경 극단 고문의 말만큼 대단한 행사는 아니었지만, 근래 보기 드물게 내실 있는 이벤트였던 것은 확실하다. 140명쯤 되는 참석자 대다수가 100달러짜리 티켓을 사서 왔다는 사실도 놀라웠고, 이들 모두 두시간반 동안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프로그램을 지켜보았다는 것도 의외였다. 게다가 행사 장소가 바로 사흘 전에 갑자기 바뀌는 엄청난 불운을 겪었던 점을 고려해 보면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여러 사람이 알고 있는 대로 ‘문화인의 밤’은 원래 총영사관저에서 열리기로 돼 있었다. 김재수 총영사가 LA 연극인들의 열악한 상황에 도움을 주겠다고 해서 극단 LA가 관저 뒤뜰을 빌려달라고 했고, 여기서 모금행사를 열기로 했다는 것이 6월18일자 본보에도 크게 보도된 바 있다. 또한 이미 수백장의 초청장이 LA의 문화예술인들에게 발송된 터라 많은 사람이 총영사관저라는 장소에 큰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행사 바로 3일 전인 지난달 29일 오후, 극단 LA 관계자들은 총영사관저에서 행사를 열 수 없다는 황당하고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김유연 극단 연출가에 따르면 이 취소 통보를 한 여자 영사로부터 받았는데 그가 말한 이유는 관저에서의 모금행사를 고발하는 ‘투서’가 들어왔기 때문에 취소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너무나 놀란 김 연출가는 총영사에게 직접 물어보려고 여러 차례 전화를 시도했으나 리턴 콜을 받지 못했고, 극단 측은 부랴부랴 새 장소로 JJ 그랜드 호텔을 섭외하고 초청장을 보낸 사람들에게 일일이 전화로 알려 무사히 ‘문화인의 밤’을 개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날 행사에는 김재수 총영사도 참석했다.
막간을 이용해 총영사에게 투서사건에 대해 물었다. 그는 “투서 같은 건 없다”고 펄쩍 뛰면서 “왜 이렇게 말들이 많은지 모르겠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 취소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모금행사는 하지 말라고 했고 분명히 그러기로 했는데 나중에 보고를 받고 보니 모금행사로 성격이 변질된 것을 알게 됐다. 관저에서 모금행사를 여는 것이 적절치 않아서 취소시켰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총영사관저에서는 과거에 여러 차례 모금행사가 열린 적이 있다. 남가주한국학원, 한미박물관, 전통식물원, 국민회관 등의 모금 파티가 총영사관저에서 열린 적이 있어서 이 사실을 언급하자 총영사는 “글쎄, 전에 누가 어떤 모금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로서는 관저에서 모금행사를 할 수는 없다. 만일 다른 단체도 하게 해달라고 하면 그 때마다 할 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짜증 섞인 어조로 대답했다.
이에 대해 극단 측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연극계를 도와주겠다고 해서 관저를 빌려달라고 한 건데 모금행사 하는 걸 사흘 전까지 몰랐다는 게 말이 되나. 모금이 아니면 우리가 자선단체도 아니고 뭣 때문에 그 많은 사람을 불러다 공짜 잔치를 하겠느냐”며 분개했다.
양측의 말 중 어느 것이 진실일까? 미안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극단 측의 말을 믿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피해자(?)로서 거짓말을 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고, 또 ‘정통한’ 한 소식통이 전해준 바 ‘진짜 이유’는 영사관 내부의 정치싸움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해설이 설득력 있는 게 들리기 때문이다. 아무튼 어떤 이유로든 지난 3월부터 문화계의 흥분 속에 추진돼온 큰 행사를 잔치 3일 전에 단 한방의 전화로 취소시켰다는 데 대해서는 총영사가 너무 경솔하지 않았느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취소 통보전화를 여자 영사가 했는데 그에게 시킨 이유가 “여자가 하면 좀 부드럽게 느껴지지 않을까 해서”였다는 사실은 정말 믿어지지 않는 코미디다. 영사관의 수준이 이 정도라면 더 이상 말해서 무엇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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