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장대비 내리는 휴일,
오래 계획했던 일 취소하고
한나절 그레고리안 성가를 듣는다.
장엄하고 아름다워야 할 합창이
오늘은 슬프고 애절하게만 들린다.
창문을 열면 무거운 풍경의 빗속으로
억울하게 참고 살았던 혼들이 떠나고
그 몸들 다 젖은 채 초라하게 고개 숙인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여, 이제 포기하겠다,
당신이 떠나는 길이 무슨 인연이라고 해도
라틴어로도, 또는 어느 나라 말로도 거듭
용서해달라는 노랫말이 아프기만 하다.
마종기(1939 - )
1999년에 출판된 <마종기 시전집>에는 출판된 연도순으로 시들이 실려 있다. 뒤쪽으로 갈수록 신앙과 관련된 시가 자주 보인다. 사람이 모든 관심의 대상이고, 사람이 모든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던 젊은 시절이 지나고 나면, 귀가 밝아져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걸까. 그러면 단조롭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그레고리안 성가가 가슴 깊이 젖어들 수 있을 것 같다. 내 자신을, 타인을, 도대체 언제쯤이면 용서하게 될 수 있을까. 아무리 애써도 넘을 수 없는 인간의 한계들을 느끼게 될 때, 슬픈 장대비가 내린다.
김동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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