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예방이 아닌 사후 처리 급급이 문제
전문인력과 체계를 갖춘 구조 절차 필요
지난 4월 16일 모국의 ‘천안함’ 침몰 사건은 사건발생 22일만에 함미를 인양해 냄으로써 구조 작업이 일단락 되었다. 이 사건은 한국의 백령도에서 해군함 ‘천안함’이 침몰해 104명의 탑승병 중에 58명의 생존자와 46명의 사망자를 낸 사건으로 매스컴을 통해 전세계인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사건이었다. 하기야 타국생활을 하다 보니 모국의 사건들에 대해 더 객관적으로 접할 기회가 많다. 더군다나 우물 안 개구리 시절을 잊은 듯 이제는 타국의 보도 시선으로 바라보니 고국의 대형 사건을 접할 때마다 부끄러움이 앞설 때가 더 많다. 이곳 TV뉴스에서 신기하게 다루는 한국정치판의 기구파괴와 멱살잡이 싸움이 그렇고, 대형 사고에 따른 인명 사고에 대해 가족들의 통곡에 찬 몸부림으로 사고 수습자들을 방해하는 모습도 같은 상황에서 유달리 우리민족에게만 있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캐나다에 산다고 그 민족성이 어디 가겠는가, 타국살이에 지쳤다고는 하지만 약 5년 전에 밴쿠버와 빅토리아에서 일어난 일가족을 살해하고 자살로 이어진 사건은 타민족이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우리에게는 정서적으로 익숙해진 부끄러운 민족성의 하나이다.
또한 작년 11월 위니팩의 한인 그로서리의 무모한 강도잡이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현금거래가 잦은 그로서리에 강도가 침입하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다. 이에 보안시설이 철저히 갖춰짐을 알려서 사전에 강도 침입을 막는 방법보다는 방망이와 무기 등을 숨겨놓고 강도를 기다리는 격을 취하고 있다. 이는 ‘사전 예방’ 보다는 우리민족의 운에 맡긴 ‘사후 처리’ 사고를 볼 수 있다. 당시의 현지 언론보도는 강도를 잡은 주인을 영웅취급하기보다는 더 큰 위험을 자초한 대책 없는 방식을 지적했다.
이번 ‘천안함’ 사건은 또 하나의 부끄러운 고국의 현실을 전세계에 드러난 사건이 되었다.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기 이전에 당시로는 피할 수 없는 대형사고임은 분명하다. 희생자 가족들이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안타깝다. 하지만 이러한 비극과 슬픔과 애도를 뒤로하고, 이번 천안호의 침몰 사건을 보고 모국의 대처 방법에 황당한 부끄러움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
캐나다에서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처리가 되었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가까운 교통사고 처리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주변의 모든 상황의 접근을 차단하고 각 파트에서 전문화된 구조 인력과 장비에 의해 신속히 인명 구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에 가족과 국민들은 최대의 생명구조를 위해 침착하게 사고소식을 접한다. 2002년 1164명의 실종자를 낸 미국의 911 사건을 보더라도 거기에는 더 이상 사상자도 규정에 어긋난 구조활동도 가족들의 분통도 없었다.
한 국가를 지키는 대 해군함이 침몰했다. 이는 한나라의 국방사고이자 중대한 해난 사고이다. 그런데 약 22일간의 사고수습은 자그마한 마을의 어수선한 사고 처리 수준에 이르렀다. 이번 ‘천안함’ 사건은 국가적인 군사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안전규정도 없는 무리한 구조 작업의 진행 상황과 이에 또 다른 생명들을 앗아간 사건으로 급전 된 것이 고국의 소식을 접하는 우리를 더욱 침울하게 한다.
구조 작업을 위한 현장의 기후조건과 시간상의 장비가 여의치 않음을 고려하더라도 최첨단 장비를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는 방법조차 강구하지 못했고, 대형사고에서 통상적으로 해야 할 절차도 볼 수 없었다. 처음 생존자 58명을 구한 것도 해군이 아니라 해경과 일반 어선이었다. 게다가 천안함 실종장병 구조의 마지막 희망인 함미의 위치를 처음 발견한 것도 사건 발생 이틀 뒤인 백령도 어부 장세광씨에 의해서였다. 정작 사고 처리 담당자인 한국군은 우왕좌왕 혼돈상태이다. 정치인과 국민은 자기 목소리만 높이고 있어 국가는 사고 현장보다도 더 아수라장이가 되었다. 마치 쓰나미에 휩쓸린 쓰레기 같은 땅에서 다 뜯긴 옷을 입고 서로 음식을 가지고 싸우는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결국은 안전원칙을 지키지 않고 무리하게 구조작업에 임해 한주호 준위가 희생당했고 민간 어선 10척을 무리하게 투입해서 수색 작업하다가 9명이 탄 어선 한 척이 또다시 침몰하는 비극적 재앙이 반복됐다. 이는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겠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산사람까지 사지로 모는 구조재앙을 암시한 명령이었다.
그리고 무지한 국가는 무리한 구조작업으로 목숨을 잃은 자에게 영웅을 달아 주었다. 우리는 여기서 판단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엄연히 희생자이고 순직자이다. 국가적 영웅이 아니다.
이번 천안함 사건을 보면서 문득 ‘도 아니면 모 인생’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유달리 자주 일어나는 불의의 대형사고 때마다 구조장비와 절차는 후진국 수준이고 어수선한 사후처리에 희생된 자들을 영웅 만들기로 입막음이 통하는 나라, 그래서 어쩔 땐 ‘이렇게 사느니 저렇게 죽는 게 낳다’는 생각이 드는 고국의 현실이 가슴 아플 뿐이다.
editor@i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