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지에 금·은가루로
불경 옮겨 적은 ‘사경’
LACMA 특별 전시회
‘사경’(painting sutras)은 ‘불경을 베껴 쓰는 일’을 말한다. 고려시대 우리나라 왕족과 귀족들은 하루 일과 중 사경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짙은 감지 위에 금가루와 은가루를 사용해 세밀하게 부처님 말씀을 베껴 쓰거나 경전에 나오는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 호화롭게 장식했으며 이 행위 자체를 공덕과 불심을 쌓는 일로 여겼다. 13세기말 충렬왕 이후가 절정기였는데 그 예술성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원나라에서 고려의 사경기술을 거듭 요청해 고려는 한번에 100여명씩 수차례에 걸쳐 사경단을 파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행법 중 하나이고, 값진 정신세계의 결정체이며, 예술의 최고 경지로 추앙받던 사경의 진수를 LA카운티 뮤지엄 한국미술실에서 볼 수 있게 됐다. 라크마 한국미술 갤러리는 8월1일부터 내년 1월9일까지 고려시대 사경작품들을 특별 대여해 전시한다. 이 전시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대여한 ‘십장생도’ 병풍과 사방문에 이은 후속 전시로, 십장생도는 지난 달 말 전시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새로 소개되는 전시품은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감지은니범방보살계경’과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 개인소장의 ‘감지금니묘법연화경’과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으로 고려시대 불교미술을 대표했던 사경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들이다. 이중 개인 소장의 ‘감지금니묘법연화경’은 한국에서조차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이다.
고려시대의 미술을 깊이 있게 연구한 미술사학자들은 “우리나라 미술문화재 가운데 세계 최고의 범주에 드는 것 중의 하나가 사경이며, 청자에 비할 바가 아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렇듯 중요했던 사경은 금속활자의 발명과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으로 빛을 잃게 되었고,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현대에 와서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그러나 김경호 한국사경연구회 회장의 오랜 노력으로 약 20년전부터 다시 조명받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150만명의 사경인구가 활동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 자신이 탁월한 사경예술가로서 개인전과 단체전 등 40여 차례의 전시를 통해 고려사경의 우수성을 꾸준히 알려온 외길 김경호 회장은 이번 전시를 기념해 라크마를 방문, 오는 21일 오후 2시 브라운 콜린스 강당에서 사경 시연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 시연회에서는 금가루를 내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전 과정이 전통적 방법으로 재현된다.
또한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감지금니묘법연화경’ 이미지를 넣은 대형엽서가 무료 제공되고, 전시실 내에 비디오 설명문이 설치돼 사경의 의미와 제작과정을 보여주게 된다.
이어 전시 중반부에는 정우택 동국대학교 불교미술사학과 교수의 ‘고려시대 불교미술의 기법’에 대한 특별강연이, 전시 후반에는 최응천 동국대학교 박물관 관장의 ‘금과 은의 화려한 한국미술’을 조명하는 특별강연이 계획돼있다.
라크마 한국미술실은 고려사경 전시에 이어 내년 1월 조선시대 목가구와 도자기를 주제로 특별 대여 전시를 열 예정이다.
5905 Wilshire Boulevard, LA, CA, 90036
(323)857-6000 www.lacma.org
<정숙희 기자>
묘법연화경변상도. 감지에 금니. 개인소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