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길고 무더운 여름이다. 더위에 지쳐있는 도심의 스시맨들은 퇴근길 폭염을 뚫고 스시바를 찾은 샐러리맨들이 뽀얀 김이 서리는 차디찬 맥주를 단숨에 들이키고 투명한 얼음조각 위에 차려놓은 입이 시리도록 차가운 참치회를 와사비의 톡 쏘는 매운향에 찍어 먹으며 온몸에 적신 더위를 털어낼 쯤 돼야 비로소 생기를 찾아 칼날을 곧추 세우고는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일본 기후현(岐阜縣)의 나가라강에서는 천년이 넘는 전통을 가지고 대를 물려 황실에 은유를 대던 어부들의 몇 안 남은 후손들이 이 여름밤, 돛배에 횃불을 밝히고는 그물질이 아닌 새를 훈련시켜 수박향도 은은한 여름철 진미인 은유를 잡고 있을 때이다.
올해 세계 외식산업 규모가 3,200조원이란다. 일본 농림수산청이 1조엔 수출목표를 하고 있다고 해서 한국의 농수산부가 조바심이 났는지 자꾸 단칼 승부를 노리는 느낌이다. 얼마 전 한식 홍보팀들이 일본의 유수 요리학교 교과과정에 한식이 채택되었다고 큰 공이라도 세운 표정을 지었다.
일본의 큐-가꾸라고 세계적으로 그 체인점 수가 700개가 넘는 이 일식당의 메뉴에는, 가루비, 나무르, 구파, 자푸채 등 낮선 메뉴가 끼어 있는데, 갈비, 비빔밥, 국밥, 잡채가 그것들이다. 맛하고 이름만 팔려나간 기분이다. 현해탄을 건너 김치를 배워가는 일본 주부가 만든 건 김치가 아니고 ‘기무치’인 것이다.
생선과 쌀과 콩이 주제인 일식이 건강과 장수의 음식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식자재는 물론, 술, 자기그릇, 칼, 심지어 다도, 꽃꽂이 까지 같이 팔려 나가는 건 일찍부터 외식연구개발팀이 있었고 일식의 정통성에 대한 쉐프들의 장인정신이 있었고 국력이 이를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천년의 다도(茶道)문화가 있었고, 임진왜란 때 일본장수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조선에서 데리고 간 도공들의 후예가 빚은 자기가 있었고, 17세기 초 네델란드 선원이 일본에서 가져간 간장이 불란서의 루이 14세의 식탁에 오르기도 했고 가까이는 1930년대 일본 영양학자들은 간장 식초 와사비 초생강등이 박테리아에 얼마나 강한지를 발표하면서 간장이나 식초 같은 발효식품이 설탕이나 소금 인공 조미료에 비해 얼마나 훌륭한지를 대대적으로 선전했었다.
지금의 이 뜨거운 여름, 뉴저지주의 H두부공장 주변은 물론, 위스콘신주의 K간장공장 일대는 끝도 없이 너른 들녘이 온통 콩으로 덮여 초록빛 바다를 연출하고 있을 것이다. 알래스카와 캐나다 북단의 해안가에 일인들이 세운 수산물 가공공장들은 늘 바쁘고, 캘리포니아의 드넓은 일인들의 벼농사는 올해도 풍작을 예고 할텐데. 과연 우리가 가야 할 ‘한식문화’의 세계화는 달리 지름길이 있는 것일까?
단시간 내에 ‘타(他)음식’이 문화가 다른 이지(異志)속에서 꽃 피우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식자재에 대한 믿음과 맛을 창출해 내는 요소가 독특하면서도 아름답고, 무엇보다 주객(主客)간의 따뜻한 인간애가 먼저 서린다면 속도가 붙을 수도 있을 것이다.
스시바는 취향에 따라 나만의 스시를 즐기고 조금은 들뜬 분위기를 즐기고 낯선 사람과 대화를 즐기는 공간인 것이다. 우리 스시맨들은 새로움에 대한 도전에 때를 놓쳐서는 안 되며 늘 곧으면서도 부드러운 마음을 갖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